벧샬롬교회

SERMON
새벽말씀묵상

Home > 새벽말씀묵상 > 에스겔 33장. 이제 말씀을 들은 당신의 책임이다

에스겔 33장. 이제 말씀을 들은 당신의 책임이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에스겔 33장. 이제 말씀을 들은 당신의 책임이다

에스겔 33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7-09-30

말씀내용
33장 이제 말씀을 들은 당신의 책임이다. (찬 449)

1. 33장부터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이 시작된다. 마지막 부분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처음 에스겔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때 파숫군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심으로써 그를 선지자로 재위임하신다. 3장에서는 에스겔에게 개인적으로 주신 메시지였다면 33장에서는 에스겔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이 책임을 맡기신다(2).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백성들이 수년간 에스겔을 통해 들었던 메시지에 대하여 그들이 지닌 책임을 알게 하신다. 에스겔은 지금까지 파숫군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경고를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이제 백성들의 차례다. 그들이 에스겔의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살다가 영원한 죽음의 길로 들어갈 것인가는 이제 그들의 몫이다(10~22).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는 것은 놀랍다(10a). 이것은 18장에서 자기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기들이 고생을 한다고 말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들이 에스겔의 메시지를 듣고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제는 자기들은 그 죄 때문에 결국 망하게 될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다(10b). 그들은 에스겔의 경고는 악인을 향한 경고임과 동시에 돌이켜 하나님께로 오는 자들을 향한 소망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모든 악인이 돌이켜 구원을 얻는 것이다(11).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만을 믿고 악을 행했다가는 악 가운데에서 다 죽을 것이다(12).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주어진 보장을 하나님과 별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13). 거짓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구하고 기뻐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능력과 은사와 약속들?에 집착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믿음으로 산다. 하나님은 평생에 행한 의와 죄를 달아보시고 많은 쪽에 점수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였는가에 관심을 가지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순종했는가의 여부가 죽고 사는 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것이 공평하지 않은 처사라고 말했다(17,20). 하나님은 은혜를 말씀하시지만 백성들은 공평으로 대답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시대의 죄인들이 참으로 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불평이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옳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들려질 수 있겠는가?

2. 포로된지 12년 10월 5일에 예루살렘 함락 소식이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졌다(21). 이것은 예루살렘이 함락된지 약 5개월 후의 일이다. 1년 6개월을 포위 속에서 버틴 예루살렘 성이 결국 함락되고 피비린내나는 살륙을 겪은 후, 착고에 채워져 바벨론으로 붙잡혀온 첫 무리들로부터 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바벨론으로 붙잡혀 오면서 죽었겠는가? 이 소식은 바벨론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짐으로써, 에스겔은 참 선지자임이 입증되었다. 이것은 고국에서 예언을 했던 예레미야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의 참됨이 입증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반갑고 기쁜 일일 수는 없었다. 일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일이 결국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에스겔의 입은 다시 열리게 되었다(22; 24:27참조).

3.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수준은 참으로 놀랍다. 모든 소망이 다 끊어져버렸음에도, 파괴된 예루살렘의 잿더미 위에 불이 아직 꺼지지도 않았는데 그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이 옛날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도 이 땅을 주셨는데,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많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이 땅을 계속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24). 비참한 폐허에서 그런 작위적 소망이라도 붙잡아야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숫자와 크기에 잣대를 들이대는 전형적인 죄성이다. 에스겔은 그런 비참하고도 그릇된 소망마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뜨려주어야 했다. 사실 백성에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지만 하나님은 거짓 위로 대신 그들의 남은 소망마저 깨뜨리신다. 하나님 아닌 다른데서 얻는 모든 소망과 위로는 거짓 소망과 거짓 위로이며 우상숭배이고 악이기 때문이다.

4. 선지자는 화제의 초점이 될만큼 그 진정성이 입증되었고 더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담 곁에, 집 문에 모이기만 하면 에스겔 이야기를 했고 선지자의 말씀을 들어보자고 말했다(30). 사람들은 에스겔은 음악도 잘하고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잘 부르는 자라고 추켜 세우기까지 했다(32). 어떤 선지자, 어떤 설교자가 사람들의 이런 찬사를 기쁘게 듣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에스겔로 보게 하신다.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31~32). 그들은 말씀을 듣겠다고 에스겔에게 나아와 입으로는 사랑을 드러냈지만 마음에서는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었고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순종하는 삶이 없었다. 이처럼 선지자를 좌절케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설교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좋다고 하면서 결코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지자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연예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5. 당신은 자신의 잣대로 하나님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여전히 당신의 잣대를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고 하면서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순종이 없지는 않은가? 여전히 하나님 외에 헛된 것에 소망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들려지고 있고 들려졌다면 이제 당신 영혼에 대한 책임은 당신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무겁게 듣고 순종하는 은혜를 주옵소서. 저희 영혼에 대한 책임이 주의 말씀을 들은 저희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그 말씀 앞에 정직하게 순종하는 은혜를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