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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37). 인침 받은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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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37). 인침 받은 144,000

요한계시록 7:1-8, 에스겔 9:4-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0-06-14

말씀내용
우리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세 심판 시리즈 중 첫째, 일곱 인의 심판 가운데 여섯 번째 인의 심판 까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의 심판의 환상을 보기 전, 잠시 막간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것이 7장의 내용입니다. 조엘 비키(Joel Beeke)는 7장의 내용을 주님께서 요한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이렇게 쉽게 설명합니다. “요한아, 지금까지 내가 네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었구나. 일곱 째 인으로 가기 전에 잠깐 멈추어서 내가 네게 설명해주고 싶은 게 있단다.”


1. 7장의 개요와 문맥적 고려(6:17; 7:9; 6:9-11)
이미 설명 드린대로,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심판 시리즈에서는 여섯 째와 일곱째 사이에 막간이 나옵니다. 이것은 끝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는 것인데, 일곱 대접 심판에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회개의 기회가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7장이 요한에게 주시는 주님의 설명이라면 무엇을 설명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요한과 함께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된 심판의 내용을 봤습니다. 1세기 말의 성도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마음 한 구석에 무서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7장은 이런 두려움을 가질 수 있는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요, 격려입니다. 1-8절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과 환난 속에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지를 보여주고, 9-17절은 환난을 통과하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천상에서 누리게 될 영광, 상급을 보여줍니다. 말하자면, 7장의 전반부(1-8절)는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를, 후반부(9-17절)는 천상의 승리한 교회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반부에는 요한계시록에서 나와 유명해진 숫자, 소위 144,000명이 나오고(4), 후반부에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옵니다(9). 우리는 그들이 누구이며, 그 둘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의 그릇된 해석 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이견이 많이 있는 부분이기에, 주의를 기울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교회가 누구인가를 가르치시는 주의 말씀임을 명심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문맥과 관련해서 보자면, 7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여 공포에 사로잡힌 자들이 “그들의 진노의 큰 말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물었던 질문(6:17)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직접적 대답은 7:9의 “큰 무리가…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대답의 요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능히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 이전에 재난들을 견디어낼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1-8절이 설명합니다.
그리고 문맥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다섯째 인이 떼어진 후 하늘 제단 아래서 순교한 영혼들이 드린 기도(6:9-11)와 7장의 관계입니다. 순교한 영혼들은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요한계시록 6:10).”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7장은 “드디어 그 수가 찼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144,000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통해 암시됩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의 이 본문이 종말 사건들의 시간적 연대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1절에 “이 일 후에”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여섯 번째 인의 심판 이후가 아니라, 요한이 본 환상의 순서를 가리킵니다. 사실, 세 개의 심판 시리즈도 시간적 순서라기 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일어나는 것을 중복적으로 겹치듯이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굳이 엄밀한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1-8절은 네 인의 심판(6:1-8)이 시작하기 전의 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네 인의 심판이 일어나는 동안, 순교를 하는 성도들이 있을 것이고 또한 그들이 하늘 제단 아래서 기도할 것입니다(6:9-11). 그리고 순교한 성도들을 포함하여 믿음을 지키고 인내함으로 환난을 통과한 성도들이 보좌 앞에 모인 천상의 장면이(7:9-17) 궁극적 장래에 해당됩니다.
이제 어느 정도, 7장의 개요와 그 내용을 대강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을 살펴봅시다.


2.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1; 6:10)
먼저 1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요한계시록 7:1).”
요한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의 바람이 땅과 바다와 나무들에게 불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환상을 봅니다. 여기서 ‘땅 네 모퉁이’와 ‘땅의 사방’이라는 표현은 세상 모든 지역을 가리키는 고대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우리가 ‘사방 천지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바람’은 유대 묵시문학에서 심판에 대한 자연스러운 은유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비일(Gregory Beale)은 ‘땅의 사방의 바람’이 네 인 심판에 등장하는 네 말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온 세상 끝에서 몰아닥치는 심판을 네 천사가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와서 해칠 대상은 ‘땅, 바다, 각종 나무’인데, 이것은 환유법으로 이해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땅에 거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6:10). 왜 네 천사가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불어 그들을 해치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일까요?


3.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하나님의 종들 (2-3; 겔 9:4-6; 계 14:1; 1:1; 2:20; 19:5; 22:3; 3:10; 16:2; 19:20; 13:17; 14:11; 17:5)
2-3절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요한계시록 7:2–3).”
여기에 또 한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 천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고,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권세를 가진 천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천사가 ‘해 돋는 데로부터’ 왔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해 돋는 곳(동쪽)이 종종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상징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김추성). 그런데 신천지는 이것이 동방의 한국을 의미한다고 무리한 해석을 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졌다는 것은 그 천사가 가진 권위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옥새를 가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인은 고대의 왕들이 공적 문서를 봉인하고 보호하는데 사용하던 인장 반지를 의미합니다. 인치는 일은 왕이 행사하는 일이고 인을 소유했다는 것은 왕의 권세를 갖고 결정을 내리거나 왕의 칙령을 확증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이 천사가 바람을 붙잡아서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라는 이유는, 그전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에스겔 9:4-6의 인유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에스겔 9:4–6).”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앞두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한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에게 명하여 그 성읍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고’ 그 후에 심판을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상황과 매우 유사합니다. 네 천사가 바람을 붙잡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를 보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게 하십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기본적으로 인을 친다는 것은, 다가올 심판에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보호는 소유권에서 오는 것인데, 인침은 노예나 가축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고대의 통상적 방법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요한계시록 14:1).”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침으로써 다가올 심판과 재난에서 보호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은, 일곱 인과 나팔과 대접 심판의 직접적 대상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보호하시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성도들은 고난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네 인의 심판에서 교회도 물리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뿐 아니라 박해와 핍박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인에서 보았듯이, 순교자들도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인침은 성도의 육체를 보호하시겠다는 뜻이라기 보다, 모든 고난과 박해 속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지켜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란 표현은 심지어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인침 받은 백성을 보호하실 것을 보여줍니다. 제임스 보이스(James M. Boic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침이 성취하는 것은 믿음 안에서 성도들의 인내다. 성도들이 끝까지 설 수 있도록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다.”
그렇다면 누가 인침을 받습니까? 이 질문은 인침을 받은 144,000명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3절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천사들이나 하나님의 종들이나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동료임을 보여줍니다. 인침을 받는 대상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종입니까? 목사나 선교사들입니까? 장로까지 포함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까? 먼저 요한계시록에서 이 말이 어떻게 쓰이는지 몇 구절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요한계시록 1:1).” 여기서 ‘그 종들’은 요한계시록을 읽게 될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요한 자신도 ‘종’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요한계시록 2:20).” 여기서 이세벨이 유혹하는 ‘내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9:5).” 여기서도 ‘하나님의 종들’은 작은 자나 큰 자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요한계시록 22:3).” 여기서도 ‘그의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본문 3절에서 이마에 인침을 받는 ‘하나님의 종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인침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어떤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자기 믿음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요한계시록 3:10).”
인침을 받는 하나님의 종이 성도를 가리킨다는 해석은, 짐승의 표를 언급하는 말씀에서 더 확실해집니다.
“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요한계시록 16:2).”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요한계시록 19:20).”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우상숭배자들이고 짐승을 섬기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인처럼, 짐승의 표도 짐승의 이름입니다(계 13:17; 14:11).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요한계시록 17:5).”
결국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성도들은 보호를 받습니다. 세상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로 나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입니다.


4. 인침을 받은 십 사만 사천 (4-8; 21:12-14; 19:14; 9:16)
남은 문제는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144,000명은 누구를 가리키며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크게는 144,000이 문자적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인가, 상징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가 하는 것입니다.
144,000명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입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이스라엘 민족(휴거 뒤에 예수님을 믿게 될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대주의의 입장인데, 사실상 북왕국 이스라엘이 주전 8세기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뒤 북왕국을 구성했던 열 지파는 민족적-혈통적으로 사라져서 그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 견해는 지지 받기 쉽지 않습니다. 이들을 혈통적 이스라엘로 보지는 않지만, 144,000명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같은 이단들도 있습니다.
여기서 144,000과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한 해석입니다. 먼저 144,000이 어떻게 나온 숫자인지를 보지요. 요한계시록 21:12-14입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요한계시록 21:12–14).”
구약 12지파와 신약 12사도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12는 7과 함께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이 완전수 두 개를 제곱하면 144가 되는데 여기에 1000을 곱해서 144,000이 되는데, 이것은 ‘완전하다, 온전하다, 충만하다’는 뜻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누구도 제외되지 않았고 수가 찼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영적 이스라엘이기에(롬 2:29; 갈 6:16) 여기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은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인침을 받은 144,000의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여기 열 두 지파의 목록에 의아한 점들이 보입니다. 먼저 순서가 장자인 르우벤으로 시작하지 않고 유다로 시작하고 그 순서도 뒤죽박죽입니다. 유다로 시작한 것은 메시아가 유다 지파로부터 오셨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에는 단 지파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으나, 단 지파가 우상숭배에 특별히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해 보입니다. 단 지파는 자신들을 위해 신상을 만들었고(삿 18:30) 후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두 곳의 우상 신전 중 한 곳이 되었습니다(왕상 12:29). 단 지파가 빠진 자리에는 레위 지파가 추가되었는데, 이제는 레위 지파만이 아니라 모든 지파가 다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일 것이고, 단 지파가 빠짐으로써 12가 되지 못하는 것을 메워야 했기 때문에 레위 지파가 추가되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므낫세와 요셉 지파가 나오는 것이 특이합니다. 보통이라면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나와야 하는데, 에브라임 대신 요셉 지파라고 된 것입니다. 이것도 에브라임이 특별히 우상을 섬긴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에브라임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대신 요셉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마치 민수기에서 인구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게 사실입니다. 당시의 인구조사는 군사적 목적이 주요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보컴(Ricard Bauckham)은 144,000의 숫자는 그리스도의 깃발을 달고 만국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끌 메시아 군대의 숫자라고 말합니다(19:14). 여기서 4절이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라고 시작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1-3절의 환상은 눈으로 보았지만, 4-8절의 내용은 귀로 들었습니다. 1절에서는 ‘보니’라고 했고 4절에서는 ‘들으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의 다른 곳에서 유일하게 숫자를 들은 경우는 세상 군대의 숫자를 들은 것입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요한계시록 9:16).” ‘이만만’은 세상 군대, 짐승을 따르는 군대의 숫자인데, 10,000 곱하기 10,000 즉, 2억을 의미합니다. 144,000은 세상 군대의 숫자인 2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군대는 세상 군대를 이기고 승리할 것입니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이기는가에 대해서는 7장의 후반부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군대 개념은 지상 교회가 전투하는 교회라는 관점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5. 교훈과 적용: 당신은 인침을 받은 자인가? (고후 1:22; 엡 1:13; 4:30; 요 6:37)
우리는 오늘 짧은 본문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한 가지에 집중해 봅시다. 144,000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의 총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들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각각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가올 환난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지금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을 섬기고 살아가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견뎌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친 자들만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인침을 성령을 받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음 세 구절을 주의깊게 보십시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1:2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13).”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다는 것은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인침은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환난 속에서,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고난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믿음을 지키고 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믿음을 지키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내가 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만이 성령의 능력으로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어떤 시험이 와도,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이기는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습니까?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까? 어떻게 압니까?
이보다 더 중차대한 질문이 우리 인생에 있겠습니까?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다면, 그것을 알고 있다면, 감사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과 어린 양께 돌리십시오. 그러나 그 사실이 미심쩍고 불안하다면, 지금 당장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진심으로 은혜를 구하는 자들을 결단코 내쫓지 않으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7).”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