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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47).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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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2019 - (47).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요한계시록 11:14-15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20-08-30

말씀내용
이제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막간 환상이 마치고 드디어 일곱째 나팔이 불려집니다. 우리는 10장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힘센 천사가 한 말을 기억합니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10:6–7).”
일곱째 나팔이 불려지면 더 이상의 지체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성취,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 셋째 화의 내용이 이상하다.
그런데 이 일곱째 나팔과 관련해서 14절은 셋째 화가 속히 이른다고 말합니다. 다섯째 나팔 심판부터 일곱째 나팔 심판까지는 세 개의 화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만큼 심판의 가혹함이 앞의 네 심판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셋째 화라고 불리는 일곱째 나팔이 불리면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런 우리의 기대를 깨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는데,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은 드디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었다는 승리의 선언이고, 오래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했고 바랐던 바입니다. 그러나 재앙은 아닙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A. ‘큰 음성들’(15)
보통 ‘큰 음성’이라는 표현이 요한계시록에는 9번이나 등장합니다. ‘큰 음성’ 외에도 나팔 소리와 우레 소리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래서 조엘 비키는 “요한계시록이 아주 시끄러운(요란한) 책(Revelation is a very noisy book.)”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큰 음성이 유일하게 ‘큰 음성들’이라고 복수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내용이 가지는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이 큰 음성들은 아마 천상의 찬양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게 하나님의 종말론적 승리를 찬송하는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요한이 들은 그 소리는 전과 뒤에 듣는 큰 소리와는 분명하게 비교되는 코러스였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라는 내용은 요한계시록의 중심 구절이라고 할만한 내용입니다. 어쩌면 천지창조부터 긴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바라보던 그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성경 전체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B.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 코러스
우리는 죠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 1685~1759)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예언으로부터,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영원한 메시아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3부 53곡으로 구성된 대작입니다. 전곡을 연주하는데 거의 2시간 반이 걸립니다. 하지만 헨델이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4일이었습니다. 그는 1741년 8월 22일에 시작해서 9월 14일에 ⟪메시아⟫ 전곡을 완성했습니다. 그 24일 동안 그는 먹고 자는 것을 잊을 만큼, 이 작품에 몰입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시종이 이사야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라는 말씀을 펴놓고 악보를 쓰면서 울고 있는 헨델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실제로 헨델 자신은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나는 내 앞에 모든 하늘이 펼쳐졌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뵈었다고 느꼈다.” 물론 특별한 환상을 보았다기 보다, 그는 성경을 통해서 본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24일 동안 헨델을 완전히 사로잡으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시편과 이사야에 예언된 그리스도,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심과 수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복음서의 모든 말씀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찬송들과 그의 영원한 통치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놀랍게 사용하여 이 작품을 쓰게 하신 것입니다. ⟪메시아⟫의 절정은 아마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속죄의 죽으심으로 이어지는 2부의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 코러스라는데 많은 분이 동의할 것입니다. 이 곡이 바로 본문 15절을 그 내용으로 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아래는 ‘할렐루야’ 코러스의 가사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전능의 주가 다스리신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
그 그리스도의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세세에 왕 노릇 하시리라
세세에 왕 노릇 하시리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세세에 왕 노릇 하시리라
세세에 왕 노릇 하시리라
왕의 왕 영원히 영원히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세세에 왕 노릇 하시리라
왕의 왕 또 주의 주
왕의 왕 또 주의 주
세세에 왕 노릇 하시리라
왕의 왕 또 주의 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2. 선언의 의미(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헨델은 이 곡을 통해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늘의 큰 음성들이 선언하는 이 내용은 어떤 의미이며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A. 세상 나라인가, 세상 나라들인가? (단 7:1-8; 고후 4:4; 엡 2:2; 6:12; 요 12:31; 14:30; 16:11; 요일 5:19)
먼저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세상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다니엘의 예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니엘 7:1-8입니다.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또 보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다니엘 7:1–8).”
이 다니엘의 환상에는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옵니다. 첫째는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의 모양입니다. 둘째는 잇사이에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의 모양이고, 셋째는 새의 날개 넷과 머리 넷이 있는 표범의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무섭고 놀라운 모양인데, 쇠로 된 큰 이와 열 뿔을 가진 모양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다니엘이 본 환상의 짐승들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제국들, 바벨론으로부터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의 제국들과 통치자들을 묘사합니다. 이들이 바로 오늘 본문이 묘사하는 세상 나라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쓰여지던 1세기 말은 로마 제국이 황제 숭배를 노골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종교적 권세를 가지려고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면 이상한 게 있습니다. 역사 속의 제국들과 통치자들을 가리켜 ‘세상 나라’라고 해야했다면 왜 세상 나라가 단수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짚고 갈 것이 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세상 나라들이라고 복수로 번역한 성경이 KJV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단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역사 속에 일어났다가 사라진 그 모든 제국과 나라들, 그리고 통치자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의 관점은 그것은 오직 사탄의 다스림을 받는, 짐승으로 표현되는 단 하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나라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세상’ 나라라고 불리는 것일까요?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세상’이라는 말의 55%가 요한복음과 요한서신(주로 요한일서)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피조물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반항해왔고 하나님의 목적들과 충돌해 온 인간 세상을 언급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이 나라들이 모두 사탄에게 속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이 사탄을 가리켜, 이 세상의 신(고후 4:4),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세상 주관자(엡 6:12), 이 세상의 임금(요 12:31; 14:30; 16:11)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나라는 곧 사탄의 나라를 가리키고 역사상의 모든 제국과 통치자들은 요한일서 5:19에서 말씀하듯이, 악한 자 곧 사탄에게 속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의 나라(왕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세상 나라들’이라고 하지 않고 ‘세상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뒤로 가면, 이 세상 나라는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불립니다.

B.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시 2:2)
하늘의 큰 음성들이 코러스로 외치는 선언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좀 복잡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 주’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헬라어로 그리스도입니다. 사실 이 본문은 시편 2편을 배경으로 합니다. 시편 2:2에 보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본문은 이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 방식입니다. 여기서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나라들’이 아니라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삼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오직 하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반절에서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할 때, 그 나라의 통치자를 ‘그’라고 단수를 사용하는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완전한 하나이심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C. 왕 중 왕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사 11:9; 합 2:14)
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영원히 왕 노릇 하고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 외에 왕도, 황제도, 어떤 주권자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통치자와 모든 주권자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제국들이 다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경배하기 위해서 꿇든지 그리스도의 철장으로 정복을 당하여 꿇든지 할 것입니다. 온 우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존재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와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 11:9).”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하박국 2:14).”
왕 중의 왕,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영국의 왕들이 대관식을 하는 장소는 전통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 불리는 성공회 성당입니다. 즉위하는 왕이 선서를 하는 단 위에는 성경의 한 구절이 쓰여져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 11:15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물론 KJV을 따라 ‘세상 나라들’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메시지입니다. “이제 영국을 다스리는 왕이 되는 너는 알라.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것이다. 너는 그분을 섬겨야 한다.”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이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위에 더 높은 통치자가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왕들은 대관식에서 자신들의 위에 계신 더 높은 권위의 왕이신 하나님께 자신들이 언제나 응답해야 하는 존재임을 엄숙한 맹세로써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영국의 왕 죠지 2세가 멋진 방식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헨델의 ⟪메시아⟫가 런던에서 공연될 때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죠지 2세는 ‘할렐루야’ 코러스가 울려 퍼질 때,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왕이신 ‘주와 그의 그리스도’께 경의를 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당연히 모든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이후 ⟪메시아⟫가 공연되는 곳에서 ‘할렐루야’ 코러스가 울려 퍼질 때마다 회중이 일어나서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는 관례가 생겼다고 전해집니다.


3. 승리와 환희의 순간(계 10:6-7)
오늘 말씀을 거꾸로 돌려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일곱째 나팔은 분명히 셋째 화라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섭도록 떨리는 재앙이 온 세상을 떨게 하는 대신 본문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하늘의 큰 음성들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셋째 화는 12-14장 혹은 12-21장의 내용에서 소개된다고 해석하기도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11:15-19은 일곱째 나팔 심판으로서 셋째 화의 내용인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10:7에서 일곱째 나팔이 불려질 때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14절에서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속히’라는 말이 추가된 것입니다. 또 10:6에서 힘센 그 천사가 이 때에는 “지체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씀들은 일곱째 나팔에서 어떤 지연도 없을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계속 살펴볼 16-19절에서 설명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무서움과 혹독함의 면에서 최후의 심판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일곱 나팔 심판이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최후 심판의 묘사가 짧은 것은(15-19절) 최후 심판이 긴 기간을 다루는 내용이 아니라 결정적인 시간에 일어나는 결정적인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레고리 비일은 설명합니다. 다만, 이 최후 심판이 땅에 거하는 자들, 우상 숭배자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나라에게는 무서운 재앙이요 화가 되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승리의 환희를 안겨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을 본문은 잘 보여줍니다. 현대사에서 일본의 패망과 대한의 독립을 생각해 보십시오.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각각 원자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됨으로써 형언할 수 없이 무섭고 참담한 일을 겪고 나서 일본이 패망한 것이 곧 우리나라의 독립이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 주님의 재림이 가지는 두 가지 속성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곱째 나팔 심판은 셋째 화로 불림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고 감격적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메시아⟫의 ‘할렐루야’ 코러스가 큰 음성들로 터져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4. 교훈과 적용: 아무 것도 신자를 절망하게 할 수 없다. (마 5:11-12; 요일 2:17; 계 22:12)
요한계시록의 처음 독자들인 1세기 말의 성도들에게 일곱째 나팔 심판이 시작될 때 선언되는 이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요?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고 묵상하면서 언제나 이 생각을 먼저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제 숭배의 압력을 받아 도시의 상인과 장인 조합에서 온갖 불이익과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던 성도들, 한편으로는 로마제국과 그 시민들로부터 압력을 받아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고발과 박해를 겪어야 했던 1세기 말의 성도들, 그리고 안으로는 온갖 이단적 가르침들이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던 상황에서 이 승리의 나팔 소리와 승리의 개가는 그들의 가슴을 얼마나 뛰게 만들었을까요?
이 장엄한 하늘의 코러스는 세상 나라에 대한 굴복과 타협의 유혹 앞에서 연약해지려 하던 그들의 무릎을 강하게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견딜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제 조금 남았다. 그 승리의 날을 나는 기다린다.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속히 다시 오실 것이다.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왜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일 때, 그리고 흩어질 때, ‘마라나타!’라고 인사를 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너무나 현실적인 기대였고 바람이었습니다. 주님의 재림 약속이야말로, 그들이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현실로 와 봅시다. 우리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서는 하루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느낍니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없어도,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과연 정상적인 것이 맞습니까? 저는 오늘날 21세기의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원인이 여기 이 문제와 관련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생각해 봅시다. 세상을 사는 동안, 무엇이 우리를 낙심하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주눅들게 하고 여러분을 낙심하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세상 나라의 위엄과 권세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로마 제국이 교회를 박해하였듯이, 세상 나라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런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낙심하고 절망하기 보다,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1–12).” 그리고 그들은 도리어 믿음으로 기뻐했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물질의 문제로 여러분을 옥죄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세상 나라는 건강을 빼앗아서 여러분의 마음을 불안하고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세상의 자랑거리로 여러분의 마음을 주눅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주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사랑하는 여러분,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마음을 낙심하게 하고 절망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가 이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것으로도 여러분을 흔들 수 없고 우울하고 절망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라고 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