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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82). 신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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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강해 - (82). 신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시편 82:1-8, 요한복음 10:34, 로마서 13:1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21-06-16

말씀내용
시편 82편은 하나님께서 법을 집행하고 세상에 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주신 대상을 꾸짖고 심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1. ‘신들’이 누구인가 (1,6; 요 10:34)
하지만 이 시편에서 그 심판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들의 모임’ 가운에 서신다는 1절의 표현과 6절에서 ‘너희는 다 신들이며’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들’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로힘(אֱלֹהִי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크게 이 해석은 천사와 같은 초자연적 권세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입장과 인간 재판관이나 통치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으로 갈립니다. 첫번째 입장은 한 국가나 민족을 다스리는 지상의 군주 배후에 있는 초자연적 권세를 언급하는 다니엘 10장의 ‘바사 왕국의 군주(13)’나 ‘헬라의 군주(20)’ 같은 개념을 통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에베소서 3장에서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10)’에 대한 언급도 관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보는 바,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짐승의 존재도 이런 해석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입장 안에는, ‘신들’ 이방인들(특히 가나안 족속들)이 숭배하는 신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사탄을 비롯한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킨다는 범주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해석은 칼빈이 말하는 것처럼, ‘신들’은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인간 재판관들(여기에 통치자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이라고 보는 해석입니다. 재판관이란 재판을 받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은 예수님 자신의 인용과 해석에 의해 지지를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시편 82:6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한복음 10:34).”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칭한다고 신성모독의 죄를 씌워 죽이려고 하는데, 주님께서 이 구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구절을 인용하시는 배경에는 지상의 재판관과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심판을 내리는 자들(통치자들을 포함)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결국 지상에서 법을 집행하는 모든 재판관들이나 통치자들은 궁극적으로 최고의 재판장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들이며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시편 기자가 ‘신들’이라는 단어로 인간 재판관들이나 통치자들 뒤에 있는 초자연적 권세들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 재판장이나 통치자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신들에 대한 고소 (2-5; 욥 1:6; 2:1; 막 12:40; 요 19:11; 롬 13:1; 욥 29:12,15-17; 전 5:8; 신 17:18-20)
그렇다면, 1절에서 ‘신들의 모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에서 그들(신들)을 재판하신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하고 악한 천사들을 불러 모임을 주재하신다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욥기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불러모아 말씀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욥기 1:6; 2:1도 참조).”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 법정을 열러 악한 통치자들을 재판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편 기자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강조하기 위해 초자연적 존재들의 모임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세계관입니다. 세상은 선과 악, 그리고 선을 다스리고 악을 주관하는 신들의 싸움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서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로 악한 사탄의 역사를 허용하시다가 결국 그와 모든 악한 존재를 심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헛된 신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오직 자신들을 심판하실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이 이 시편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신들’을 심판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 재판관들이나 통치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은 율법의 전문가들이었고 그 말씀으로 판단을 내렸던 당대 서기관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마가복음 12:40).”
그렇다면,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나 통치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집행한 판결과 모든 재판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4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법 집행의 기준을 보여줍니다. 2절에 ‘불공평한 판단’은 그들이 정의를 잘못 혹은 구부러지게 실행한 것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는 말씀은 직역하면 악인들의 얼굴을 들어올린다는 의미인데, 악한 자들을 편애했다는 뜻입니다. ‘언제까지 하려느냐’는 말씀은 하나님의 깊은 탄식과 함께 더 이상은 참아보지 않으시겠다는 최고 재판장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편파적이지 않으시기에 완전히 의로우시기에, 그 대리인인 모든 재판장과 통치자들은 그분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어 오직 정의를 구현해야만 합니다.
3-4절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임무가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그들의 부당하고 부정한 판단을 고발합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시편 82:3–4).”
세상의 모든 재판관과 통치자들이 가진 권위와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로마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서 빌라도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한복음 19:11).” 이것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관계 없이 세상의 모든 재판관과 통치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일반화시켜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로마서 13:1).”
그러므로 세상의 재판관과 통치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여하신 임무를 하나님이 주신 정의와 긍휼이라는 기준에 따라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행하지 않을 때, 그들은 그들 위의 심판자요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하는 것이고 마지막 날 하나님은 그들의 심판주로서 그들의 책임을 물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기준이 3-4절입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재판)해야 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 그리고 다시 4절에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는 모두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법이 그들을 정당하게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든 강자들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기본 권리와 존엄에 대해서 얼마나 분명한 입장을 가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리하게 사회의 제도를 뒤집어 놓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제공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모든 지도자들, 왕이나 대통령 혹은 재판장들은 압제를 당하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변호하고 지탱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정치적이거나 법적 지도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모든 사회와 조직의 지도자들이 되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욥은 고난 받기 전의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욥기 29:12, 15–17).”
욥과는 달리,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신들’은 불공평한 판단을 했고 악인의 낯을 보고 편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전도서는 솔직하게 진술합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전도서 5:8).” 이들은 악한 자들의 편이었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들을 위한 정의를 세우는 일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언제나 이런 지도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가령,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재위 1515-1547)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한 여인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정의를 베풀어달라고 간청을 하자 왕은 여인을 일으켜 세우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인이여, 당신이 정의 외에 무엇이든지 내게 간청한다면 그것은 자비가 되겠지만, 나는 당신이 마땅히 가져야 할 정의를 당신에게 빚진 것이오.” 프랑수아 1세는 왕으로서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이 마땅히 정의를 왕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모든 재판관과 통치자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정의에 관한 한 자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도자는 ‘자기 좋은대로’가 아니라 정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왕위에 앉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할 책임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명기 17:18–20).”
5절은 정의를 굽게 하는 지도자들의 상태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그들로 인해 사회가 겪어야 하는 대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시편 82:5).” 부패하는 권력의 성질에 영향을 받아 그들은 선과 악을 분별 조차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였든지, 그들이 얼마나 영예로운 학위를 가지고 있든지, 그들은 흑암 중에 왕래하는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이 흑암은 그들이 만들어낸 혼돈이거나 그들이 죄를 덮는 방식으로서의 어둠을 의미합니다. 그런 지도자들이 권세를 부리는 사회는 땅의 터가 다 흔들린다고 할만큼, 질서가 다 무너져버린 사회입니다. 경건함과 의로움에 반하는 법적 결정들이 행해지고 그런 것을 용인하는 사회는 그 사회의 종말을 보오주는 셈입니다.


3. 신들에 대한 판결 (6-7; 창 18:19; 3:5; 계 20:10,15)
하나님께서는 이런 ‘신들’을 향해 재판장으로서 선고를 내리십니다. 그 선고는 사형선고입니다. 6-7절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시편 82:6–7).”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는 말씀은 약간 냉소적인 표현입니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이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대변하는 관리자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합니다. 이들은 정의와 공평이라는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야 했지만(창 18:19), 이 일에서 실패했기에 그들은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진다는 하나님의 판결을 받습니다. 여기서 ‘사람처럼 죽으며’라는 말을 히브리 말로 읽으면 ‘아담처럼 죽으며’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신이라면 겪지 않아도 될 운명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했던 첫번째 사람들에게 죽음이 선고된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창 3:5).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고는 그들이 사람처럼 죽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본 바 둘째 사망입니다(계 20:10,15).
인간 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들을 향한 사형선고가 왜 중요한지는 어거스트 톨럭(August Tholuck)의 말이 잘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는 죽음은 세상의 통치자들을 향한 가장 효과적인 설교다.”


4. 시인의 간구 (8)
마지막 8절은 시인의 간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편 82:8).”
‘세상’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지도자들, 재판장들, 통치자들을 막론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어떤 정치 지도자이거나 판사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모두 가정과 일터 또는 기타 모든 조직과 단체에 적용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5. 교훈과 적용 (히 4:15; 계 20:12)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첫번째 교훈으로 자연스레 인도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모든 시대의 지도자인 왕이나 대통령 혹은 재판장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며 압제를 당하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정당하게 변호하고 지탱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정치적이거나 법적 지도자들만이 가지는 가치가 아닙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이나, 모든 조직이나 단체에서 책임을 가진 위치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우리에게 주어진 권한을 사용하여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권한 행사로 불이익과 부당함을 당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워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잘못된 방향을 향하는 사회의 계획이나 체제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희생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가련한 자들을 진정으로 돌보는 사람들의 선봉에 서서, 그들의 고난을 경감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도록 책임을 가진 자들에게 촉구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두번째로, 칼빈은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에서 불의를 보면 항상 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기도입니까? 8절의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편 82:8).”그렇게 우리는 최후의 재판관이시고 가장 높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습니다. 군대면 군대, 직장이면 직장에서 부당한 갑질과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억울함을 가눌 길이 없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뉴스에서 보고 듣습니다. 내 억울한 사정을 들어줄 이 없다고 해도, 정말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편은 보여줍니다. 그들 위에 그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실 하나님이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서 모든 억울함과 부당함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부당한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으셨으며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
그리고 그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모든 행위를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요한계시록 20:12).” 그 심판을 피할 존재는 없습니다. 여기에 모든 주의 백성의 위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