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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4) - 십자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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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4) - 십자가의 깃발

출애굽기 17:8-16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0-07-30

말씀내용
1. 아말렉, 영원한 하나님의 원수
본문에 기록된 아말렉과의 전쟁은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만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싸운 이 첫번째 전쟁은 앞으로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이 싸우게 될 모든 전쟁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맹세하셨습니다.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이해할 때 제일 먼저 던질 질문은 ‘아말렉이 누구인가?’하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야곱의 형제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에게 그 첩인 딤나가 낳은 아들입니다(창 36:12). 그러니까 에서의 손자가 됩니다. 즉 아말렉 족속은 혈통적으로는 에서의 후예입니다. 그러나 이 민족이 본격적으로 성경에 등장한 것은 이것이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을 습격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 민족에 대해서 매우 의미있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 부분이 이 본문의 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신명기 25:17~18입니다. “(17)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할 때 뒤에서 지치고 약한 사람들을 급습했던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그 일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비겁하게 노약자들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시편 83:4~8을 보지요. “(4)말하기를 가서 그들을 멸하여 다시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하나이다 (5)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6)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7)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8)앗수르도 그들과 연합하여 롯 자손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모세를 통해서 그 약속과 뜻을 성취해가고 계시는데 지금 아말렉은 그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지 못하게 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공격하고 싸운 대상은 실상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모세가 말한 배경입니다. 이들은 가나안 남쪽에 자리를 잡고 살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르비딤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지역이 이스라엘에게 침해를 받았기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멀리서 이스라엘의 소식을 듣고, 전쟁을 하여 이스라엘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르비딤까지 원정을 나온 것입니다. 이만하면, 우리는 이들의 열심,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왕위를 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결정이 내려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아말렉과의 전쟁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치고 사람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그리고 가축들까지도 다 죽이고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고 사무엘을 통해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 일 바로 오늘 본문의 전쟁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사울의 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심판을 아말렉에게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왕 아각을 살려놓았고 온갖 좋은 짐승들은 다 남겼습니다. 그것이 백성들의 마음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편에서 심판을 행하는 의로운 전쟁을 수행하면서 약탈전쟁이 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로 그를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아말렉 사건 때문에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말렉은 하나님의 원수인데, 사울은 그 왕 아각을 선대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을 온전하게 수행하는 쪽 보다 백성들 앞에서 자기의 인기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말렉이 하나님의 영원한 원수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사로이 풀 문제가 아닙니다. 아말렉은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2. 아말렉과의 전쟁은 영적 전쟁이다.
우리가 또 한 가지 여기서 기억해야만 할 것은 이 전쟁이 영적 성격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이 전쟁을 수행합니까? 여호수아는 이제 처음으로 용사들을 뽑아서 나가 이스라엘의 첫번째 전투를 지휘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호수아와 군사들의 창검이 아니라 모세의 손에 달려있었다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이 피곤해서 내려오면 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모세를 앉히고 양쪽에서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결국 해가 지기까지 손이 내려오지 않으므로 이스라엘은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그것은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전쟁은 창검으로 싸운 전쟁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군사들의 용맹과 수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승패는 창검에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기도로 이긴 전쟁입니다. 그것도 모세 그리고 아론과 훌이라는 소수의 기도하는 지도자들로 인하여 이긴 전쟁입니다.

3. 영적 지도자가 아니라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세도 알고 여호수아도 알지만, 여기 처음 등장하는 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조금 생소할 수 있습니다. 훌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여호수아와 함께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게 장로의 모범으로 제시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잘 알려진 경건한 인물 갈렙의 아들이었고 성막을 만든 브살렐의 아비였습니다(대상 2:19~20). 요세푸스에 의하면 훌은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의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모세에게는 이런 좋은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탁월한 지도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이스라엘의 광야교회에 주신 것은 단지 모세 한 사람이 아니라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훌이라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초대교회에서 이런 저런 많은 문제들이 자신들의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자, 집사들을 뽑아서 그들에게 행정적인 일들을 위탁하고 다시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오늘날에도 요구됩니다. 물론 목사는 대개가 전임으로 그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장로는 일반적인 직업을 가지고 주님을 섬깁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영적 지도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가진 교회는 복된 교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신 것도 역시 기도에 대하여 적용해야 할 말씀입니다(마 18:20). 두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예를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지도자 5 사람은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행 13:1~3). 그때 하나님께서 사울과 바나바를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세계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지도자들이 모여서 기도하게 되면 그들은 무엇을 기도하게 될까요?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의 대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저런 문제들, 먹고 사는 문제들에 묶여서 그런 기도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방식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과 더불어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모세가 기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인정할 것은 기도 자체가 능력이 아니라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능력이라고 말할 때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기도가 능력 자체가 되면 기도하는 사람이 영광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4. 여호와 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
이 전쟁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일을 써서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름을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겠다던 아말렉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모세는 그곳에 승리를 기념하여 단을 쌓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말입니다. 이 깃발은 승리의 깃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승리이고, 내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는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맹세를 모세는 다시 한 번 상기시킵니다. 말하자면 이번 전투는 승리를 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쟁은 실로 계속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영적 성격의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가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함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대적함이고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이 페르시아 제국에 넘어갔을 때의 이야기 하나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스더 때의 하만입니다. 하만은 어느 한 날에 이스라엘 백성의 씨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만 자신과 함께 그의 열 아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씨가 멸하여 진 것입니다. 이 하만을 성경은 아각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는 바로 사울이 살려주었던 아말렉의 왕 아각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맹세하신대로 이 아말렉의 후손들과도 싸우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기에 하나님께서 싸우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닛시라고 한 모세의 말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서 그 의미가 조금 더 드러나게 됩니다. 이사야 11장 10절입니다. “(10)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여기서 기치라고 한 말이 바로 ‘닛시’입니다.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게 되는데 그는 만민의 깃발로 세워질 것입니다. 열방은 그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님 자신이 바로 여호와 닛시 자신이십니다. 주님이 깃발이십니다. 주님은 높이 세워진 깃발처럼 십자가에 들려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장대에 높이 단 놋뱀처럼 주님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에서 모든 승리, 아말렉,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아말렉을 향한 전쟁을 완전히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사실, 주님이 바로 깃발이시고, 십자가가 바로 깃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영적인 아말렉은 한시도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고 또 급습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언제 지쳐있는지를 압니다. 그리고 지쳐있을 때 우리를 치는 이리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도록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모습으로든지 여러분의 삶에서 영적인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지금까지 2000년 동안 교회는 영적 아말렉과의 전쟁을 한시도 쉰 적이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대대로 싸워오셨습니다. 우리도 3년 반이 넘도록 이 싸움을 쉰 적이 없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려서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실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호와 닛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함께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아무도 그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품고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인 교회로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