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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6) - 교회를 다스리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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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6) - 교회를 다스리는 원리

출애굽기 18:13-27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1-03-11

말씀내용
1. 상황: 모세 그리고 지쳐있는 목회자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 인근에 도착해 있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장인에게 맡겼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다시 찾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거기서 쉼은 얻게 되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쉼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의 사회는 그냥 굴러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문제들이 그들 사회에서 벌어지고 그 문제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은 선지자 모세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재판하는 일을 위해 하루 종일을 앉아 있어야 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습니까? 결코 필요는 완전하게 충족되어서 더 이상의 필요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법은 없습니다. 언제나 필요는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필요들, 새롭게 일어나는 필요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계속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결과는 분명해지게 됩니다. 지쳐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비단 모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특별히 많은 주의 종들이 지쳐있는 것을 봅니다. 목회의 일은 끝이 없습니다. 제가 유서깊은 필라델피아 제10장로교회의 목회자였던 필립 라이큰의 책을 읽는데, 그분이 낮에는 목회하고, 저녁에는 동네 축구팀의 코치를 한다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매우 드문 예이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목회자는 모세와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가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또 이것은 목회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 교회를 섬겨본 분들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다 경험해보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필요도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다 채워져서 필요가 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필요는 결코 다 충족되지 않으며, 은사를 사용할 때는 언제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문제와 문제가 아닌 것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십시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를 잘 분별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모세의 동기는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소명에 더욱 충실한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하는 일이 불필요한 일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것을 백성들의 삶 중심에 적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일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했기에 모세에게 도움을 청했고 모세는 그것을 일일이 그들의 삶의 문제들 속에 적용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목회의 중심에 있는 사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와 성도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여기에 심방도, 상담도 필요합니다. 이것을 신자 개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운영에 적용하게 된다면, 그것은 또한 교회의 행정이 될 것입니다. 때로 교회의 행정은 성경과 무관한 것처럼 그냥 효율만 추구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행정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모든 교회의 일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모세가 혼자서 그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의 원맨쇼(One-man show)를 바람직하게 보지 않으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성령께서 교회에 은사를 주시는 것은 모든 지체가 몸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듯이, 교회는 수퍼스타 목사 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문제는 모세가 홀로 그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다 해서는 안 된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 많은 필요들을 충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3. 이드로의 관점과 제안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이 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결국 모세 자신과 백성 모두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18). 이것은 단지 모세 한 사람이 탈진하여 떨어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와 함께 한 백성’의 기력도 쇠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 한 사람이 지쳐서 떨어지게 되면, 교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드로는 현명한 제안을 합니다. 물론 모세는 지금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그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를 도울 수 있는 다른 지도자들이 필요하며, 온 백성 중에서 그런 자격을 갖춘 자들을 뽑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문제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지도자의 자격입니다. 이드로는 무조건 효율만을 강조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심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의 조건을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4. 교회 지도자의 조건
이드로가 제안하는 지도자의 자격 조건을 보면, 이것은 신약 성경 특별히 서신서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들과 동일한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딤전 3; 딛 1).

A. 경제적, 지적 조건이 아니라 도덕적, 영적 조건이다.
신약교회의 영적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구약 광야교회의 지도자들의 첫번째 자격 조건은 경제적인 능력이거나 그들이 가진 지적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나오는 말은 ‘재덕이 겸전한 자’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유능한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무엇이냐를 뒤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면 그 내용이 결코 세상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조건들, 즉 그 지도자가 가진 그의 성품, 내면, 경건과 도덕에 관한 조건들 뿐입니다.

B. 하나님과의 관계
이것도 약간 분석해보면 먼저 그 잠재적 지도자가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가 옵니다. 유능하다(재덕이 겸전하다)는 말을 설명하는 첫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면 근본적으로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세상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세상 지식이 아무리 높아도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외로 분별하기 쉬운 영역입니다. 그가 기도를 많이 하는가, 그가 성경을 많이 아는가, 그가 오래 믿었는가는 어쩌면 더 쉽게 분별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는 그 사람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숨겨질 수 없는 인상입니다. 그런 인상을 주려고 애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흘러나올 수 밖에 없는 그의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참된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어떤 기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이 교회 생활에 젖어 드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중에서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교회의 지도자들로 세움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첫째이고, 그것은 하나님 경외함입니다. 이 하나님 경외함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마치 자기 개인의 일을 감당하는 것과 같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개인의 일을 하는 것보다도 더 신중하게 마음을 써서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가 드러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거룩한 열심을 가지고 사적인 이해관계를 내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C. 사람과의 관계: reliable, trustworthy, 온 백성 중에서(친구, 가족이 아니라)
둘째로 유능한 지도자의 조건은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그는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여야 합니다. 진실무망하다 함은 믿을 수 있고 신뢰할만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고 인정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책임감이 없이 이렇게 되는 법은 없습니다. 그에게 일을 맡기면 다시 묻지 않아도 될 만큼 확실하게 일을 하는 책임감을 말합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일 것이고 개인의 이익을 챙기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드로는 이것을 ‘불의한 이(익)를 미워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지도자로 세움은 입었지만, 백성들이 지도자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아무 영향력도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그 지도자들은 ‘온 백성 가운데서’ 뽑혀야 했습니다. 모세가 자기의 친구나 측근, 혹은 가족 중에서 뽑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 중에서 뽑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온 백성의 지도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D. 주의: 교회의 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백성 중에서 택하여 세우라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민주주의로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장로교회를 그렇게 오해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어느 장로교회는 교회의 각 그룹의 대표들이 장로 공천 위원이 되어서 장로를 뽑기도 합니다. 그들이 이해하는 장로는 교회의 각 그룹의 대변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영적 지도자들이 선출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백성의 지도자의 조건을 여기서 보신다면, 이들이 백성의 대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여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민주주의일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성의 뜻을 섬기는 장로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면 홍해 앞에 섰을 때, 아말렉과 싸울 때 그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광야 교회의 수많은 경험에서 우리는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가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에, 때로는 그의 주변에 있는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대변했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5. 의외의 인물 이드로: 일반적인 지혜는 언제나 성경의 기준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한다.
다만 이 본문에서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의외의 인물이 이런 지혜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모세의 장인이기도 했지만, 미디안 제사장이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책은 언제나 목사나 장로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모든 지혜는 언제나 성경의 기준에 의해서 검증되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이드로의 제안은 비록 이방 제사장의 제안이었지만(물론 그가 이미 18장 전반부에서 모세의 간증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분명히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의 원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며 광야교회에서 모세가 받아들인 원리가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혜는 언제나 성경의 기준에 의해 검증받아야 합니다.

6. 적용
이제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교회 생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지자 모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로 성령 안에서 교회에 임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같이 지치시는 분이 아니시며, 우리를 종일 서서 기다리다 지치게 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주님도 성경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성령을 통하여 가르쳐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과 성령으로 교회에 임재하신다.’ 하지만 주님도 사람 지도자들을 세워서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그것이 바로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면에서 모세의 직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한다면 그는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을 것이고 곧 지치게 될 것입니다. 목사가 지치게 되면, 교인들도 지치게 되는 것은 이드로의 말대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 목사들이 지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바빠졌던 이유와는 다른 이유입니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교회는 비본질적인 일들이 본질적인 일들 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비본질이라 함은 그런 것이 없어도 교회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일이 없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예배와 교제와 전도/선교의 본질을 놓치게 되는데에는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를 마켓팅하기 시작할 때 일어납니다. 교회가 마켓팅을 생각하고 거기에 연루되기 시작하면 교회들 사이의 무한경쟁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은 결국 지도자들 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을 무의미한 일에 지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또 교회의 지도자들이 대외적인 정치 활동에 지나치게 분주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긍정적이기 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쌓는 위험하고도 부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오게 됩니다. 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종들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교인들이 다른데로 떠나지 못하도록 관리하느라 분주해지는 현상도 오늘날의 교회가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여러분, 한가함 혹은 여유가 없으면 신앙 생활을 잘 하기 어렵습니다. 바쁜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일이 많아지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마음이 잠시는 편해질지 모르지만, 그것은 신앙을 일종의 중독으로 몰아가는 마약과 같습니다. 목사도 바쁘면 괜히 내가 교인들을 위해서 뭔가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가해야 혹은 여유가 있어야 생각하고 기도하고 돌아보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유가 있어야 신앙 서적도 읽을 수 있고, 글도 쓰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잠잠함이 있어야만 목사 뿐 아니라 여러분도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바쁜 지도자를 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만큼 여유로운 지도자를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사를 도와서 교회를 목양하도록 다스리는 장로들을 세워 주십니다. 다스림은 성령의 은사이고 지도자의 은사입니다(롬 12:8). 교회는 이런 지도자들을 존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도자를 잘 세우는 것 만큼이나, 교인들이 교회를 다스리는 원리를 이해하고 지도자들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권위라는 것 자체가 무너지는 시대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 기본적으로 장로(다스리는 장로나 가르치는 장로 모두)를 존경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로의 역할을 훌륭히 잘 감당하는 분들은 배나 존경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는 더욱 존경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바울의 목사 권위주의를 드러내는 것입니까? 목사를 존경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도 아무 유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18절을 보면 일군이 받는 삯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당시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던 지도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의미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하나의 원리입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해서 섬기면서 이런 점에서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런 원리,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는 많은 교회들이 있고 생계의 문제가 걸려 있는 적지 않은 목회자들을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이것은 있고 없음을 떠나서 순종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장로의 직분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기쁨과 즐거움으로 목사와 장로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감당하는 교회는 모든 교인들이 그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도자의 자격 조건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합니다.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드로가 제안한 제도는 오늘날에는 장로제도와 흡사한 것입니다. 이런 제도의 핵심은 바로 지도자의 자격조건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성경의 조건들이 무색하다 할만큼 흐려졌고 하향편준화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만큼 기준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돈과 명예를 사랑하는 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를 다스리는 원리로서 장로제도가 바르게 시행되고 교회가 평안하게 은혜를 받으려면, 이 지도자의 자격 조건을 성경대로 고수하는 것이 절대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지도자들에 대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힘들어도 사랑하고 존경하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장로나 교인들 모두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주님은 세우신 지도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평안히 다스리시고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교회의 다스리는 원리를 제대로 알고 배우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주신 뜻이 시행되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