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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9) - 십계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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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9) - 십계명 (1)

출애굽기 20:1-3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1-04-08

말씀내용
1. 모세를 통해서 주신 세 종류의 율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시면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도덕법(the moral law)인데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이웃들과 관계를 맺을 때 바르고 영원한 기준을 제시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폐지된 것이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의 의의 기준을 제시해주는 법입니다. 둘째로 시민법(the civil law)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국가로 존재할 때 국가와 사회의 원칙과 같은 기능을 한 법입니다. 셋째는 의식법(the ceremonial law)입니다. 이것은 종교적 절기들을 지킬 때의 규정들과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규정들입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음식과 기타 삶의 정결규례를 포함합니다. 레위기 전체가 거의 이 의식법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 의식법은 더 이상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규례들이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때문이고, 그리스도께서 이 규례들이 의미하는 바를 모두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두번째 시민법도 약간은 다른 이유로 폐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체재와는 달리 교회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왕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지만, 그 왕국은 아직은 영적인 왕국입니다. 그 규정들이 보여주는 원리들은 오늘날에도 소중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 규정 하나 하나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속하는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드러내는 율법
어떤 것은 폐지되었고 또 어떤 것은 유효한데 이 율법이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왜 아직도 읽어야 하고 공부하고 깨달아야 합니까? 무엇보다 율법이 중요한 것은 율법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계시해주신 것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가령 십계명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충 짐작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분명하게 당신의 뜻을 밝혀주셨고 그것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계시하는 것이라고 할 때, 율법을 범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저버리고 모독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단순히 법을 어겼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모독하고 그 뜻을 저버린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다른 신을 섬겼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모독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이름을 멋대로 사용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예를 부인하고 모독한 것입니다. 남의 것을 도둑질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부인하고 모독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십계명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하게 드러내주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이 십계명은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 모두에게 유효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법의 기준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장 기본적으로 가르쳐주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십계명은 복음으로 시작하는 율법이다.
십계명이 복음으로 시작하는 율법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 본문 2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런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으시다는 것을 하나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대답은 바로 2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종되었던 곳에서 구원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이라는 구원의 사건이 먼저 있었고 애굽에서 건져내신 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신다는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만일 너희가 내 계명을 따라서 살아가면 내가 한 100년 정도 지켜보다가 합격하면 구원을 해주마”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무조건 그들을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원하여 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구분을 분명히 알고 계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께서 “내가 한다, 내가 해주마”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은 우리에게 하라고 하는 율법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이 서 있는 자리,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종되었던 삶에서 구원하여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마땅히 살아야 할 본래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권한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 시대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조건을 붙이시고 우리에게 요구를 하시고 그 요구가 만족되면 구원하시겠다고 하신다면 우리는 결코 그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복음 뒤에 놓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고 싶게 하고 지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방법입니다. 십계명은 복음으로 시작하는 율법입니다.

4.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리는 이제 일계명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말씀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른 신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사람들이 섬기는 다른 모든 헛된 우상들의 존재들을 다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오직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으며 어떤 우상이라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를 형성하게 될 때, 애굽에서 받은 우상숭배의 영향과 가나안 땅 사람들의 우상 숭배 풍속에서 받는 영향을 의식적으로 다루는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알과 아세라, 아스다롯, 밀곰 등 온갖 주변의 우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그런 우상들의 이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요구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첫계명을 잘 지키고 살아가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여주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모든 조건이 다 채워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이 첫 계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묵상하고 두려워하며 예배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의 축복들 안에 참여하고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명령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기념하고 찬양하는 것을 인생의 모든 활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우리들의 우상들입니다.

5. 현대의 우상들
저는 오늘 우리들의 우상들이 어떤 것들일 수 있는지를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먼저 이 세상의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라기 보다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우상들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것들은 종교적 양상을 띄고 우상이 되곤 합니다. 즉, 잘못된 신학 체계가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어내곤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믿음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들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오스 기네스는 이런 미국 교회의 현상을 가리켜 ‘미국의 대표적 이단’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위대한 행위이지, 믿음의 대상이신 위대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떤 복음주의 교회가 내건 광고문구를 보십시오. “믿음에 대한 믿음을 갖는 방법”(how to have faith in faith).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요술지팡이가 필요하고 그것을 그들은 습득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그들은 믿음이라는 요술지팡이를 놓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기도는 바로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와 매우 비슷한 것인데 자기 체험을 신앙의 근거로 믿는 것입니다. 체험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체험을 근거로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만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해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체험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 체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교리나 신학 따위는 상관없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결국 이들의 신앙은 근거없는 체험주의와 주관주의로 흘러가고 그것이 복음을 대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언급할 것은 사랑이 우상이 되는 경우입니다. 최근에 Rob Bell이란 목사가 Love Wins 라는 책을 써서 교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떠들석하게 반응할 일도 아닙니다마는, 이 사람이 주장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결국 궁극적이고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서의 지옥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사랑이 아니라 그가 나름대로 세상에서 보고 배운대로 정의를 내린 사랑입니다. 즉 그가 주장하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며, 그는 지금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 자기가 만들어내고 규정해낸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되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결코 그냥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인 훈련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현대의 우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있는 것은 바로 자아(self)라는 우상입니다. 로버트 슐러가 가르쳤던 복음입니다. 그는 자기를 믿는 것이 복음의 첫째 단계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죄는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낮은 자존감으로 해석됩니다.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이 죄입니다. 디모데후서 3:1 이하에 바울 사도는 말세의 징조로 “자기를 사랑”하게 될 것을 언급했습니다. 그대로 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아의 행복을 추구하는데로 나아가게 하고 그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모든 것을 하게 합니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종교적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결국 자아라는 우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섬기는 것에 불과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인정받고, 자신이 존종을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됩니다. 자아라는 우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행복 추구, 돈과 부에 대한 열망, 가정과 자녀들에 대한 열망 등으로 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심령 속에는 자신들과 자신의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염려는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과 기도 목록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말씀하시고 당신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여 주신 성 삼위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록 그들이 말은 “이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섬기고 있는 것은 금송아지일 뿐입니다. 우리는 칼빈이 말한대로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묵상하고 두려워하며 예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의 도우심을 구하고 살아가십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기념하고 찬양하는 것을 인생의 모든 활동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십니까?

6. 우상 분별 테스트
여러분이 지금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여러분 앞에 두고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테스트가 있습니다. 첫째는 애정 테스트(love test)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갈망하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디에 돈을 아낌없이 쓰십니까? 여러분을 흥분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취미나 스포츠, 개인적인 관심사, 직업, 건강이나 다이어트 계획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자체로 나쁜 것들이 아닙니다. 많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즐기도록 주신 것들입니다. 다만 그것들이 우상이 되는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애정의 유일하고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신 하나님의 자리에 그것들을 올려놓았을 때인 것입니다. 둘째 테스트는 신뢰 테스트(trust test)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신뢰하십니까? 여러분이 환난을 당할 때 어디로 향하게 되십니까? 마틴 루터는 “당신의 마음이 기울어지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바로 당신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독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마약이나 술 또는 섹스나 쇼핑과 같은 것들 것이 중독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들이 되곤 합니다. 여러분이 신뢰하는 것이 여러분의 생명보험이고, 은퇴연금계획이고 여러분이 성취해낸 지위나 직장이나 성공이라면 그것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리에 들어와 앉아 있는 우상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우리의 마음과 애정을 빼앗고, 신뢰를 취하여 갈 수 많은 대상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탐욕은 만족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탐욕이 곧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골 3:5). 자아가 하나님의 자리에 오는 교만,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탐욕이 얼마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입니까?

7. 첫 계명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성공하고 성취했다고 할지라도 바로 이 첫 계명이 우리의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이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혜와 부와 권력과 장수와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고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 사람을 망하게 했습니까? 무엇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판단에서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결국 단 한 가지에서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다윗과 같이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군사적 힘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었고, 외교적 영향력을 다시 하나님의 자리에 두었으며, 수많은 이방 여인들과 더불어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는 자리에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의 문제는 바로 이 첫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그 많은 축복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를 칭찬할 수 없게 만든 결정적 요소가 되게 한 것입니다.

8. 적용과 교훈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날 이 십계명이 얼마나 제대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많은 어린 아이들이 교회에서 어린 시절에 십계명을 암송하고 그 의미를 배우는가를 묻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십계명이 오늘 우리의 신앙의 삶을 규정하는 원리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지 묻습니다. 오늘 저는 이 출애굽기 강해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십계명의 본문을 설교했고 또 계속 설교할 것입니다. 이미 그 전에도 십계명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것을 설교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갈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오늘 이 첫 계명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왜 이것이 우리에게 구속력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면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여러분의 의식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 계명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키고 싶지도 않으며 그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계명은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임을 기억하십시오. 이 계명 여하에 우리의 구원이 달린 것이 아니라, 이 계명을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때 참으로 구원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고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복락을 인생 가득히 경험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참 신앙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누릴 것입니다. 이 배교의 시대에 우리가 구할 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