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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31) - 십계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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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31) - 십계명 (3)

출애굽기 20:7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1-04-22

말씀내용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발음을 하지 않고 지나가거나 거기에 ‘주님’이라고 읽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 성경을 쓰던 서기관들도 하나님의 이름 네 철자를 쓰는 것 조차도 황송히 여겨서 네 점만 찍고 넘어가곤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하는 설명이 바로 오늘 우리가 상고하려는 삼계명에 나와있습니다.

1. 이름이 의미하는 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격일 경우에는 그 인격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되고 그 사람의 정체성이 그 이름과 동일시됩니다. 즉 이름은 존재, 인격, 본질, 속성과 사역 전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이란 오늘날 서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이 소유한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인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는 부모님의 성함을 쉽게 말하지 않는 동양적 혹은 한국의 전통적 사고와 유사합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름은 성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시편에서도 같은 것을 보여주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시 5:11).”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시 7:17).”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번째 계명은 “~~말라”는 부정적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그렇듯이 긍정적, 부정적 명령을 다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긍정적 의미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삼계명의 긍정적 의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54문에서 이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긍정적 의미는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법령과 말씀과 사역을 거룩하게 그리고 존경심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답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전혀 사용하지 말라는 금령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도, 기도하는 것, 찬송하는 것 그리고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명령의 의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잘 사용하되, 그 이름을 높이고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적절하게 사용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그 이름이 영예롭게 되도록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계명이 우리의 말, 언어생활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 태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말을 통해서 반드시 드러나게 되고야 말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생각이 경홀하든지 신중하지 않든지 주를 깊이 경외하는 심정이 없을 때에는 비록 자기가 입으로 그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게 될 때 거기에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없다면 삼계명을 범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분명히 이것을 지적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입으로 범죄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면, 그것이 삼계명을 범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하나님 경외함이 없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만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가벼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떤 태도로 나타나겠습니까? 사람들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나타나겠습니까? 본질적으로 하나님 경외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위선일 뿐입니다. 하나님 경외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는 태도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에스겔과 같은 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을 때 사람들이 취했던 태도를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 33:31~33을 봅시다. “(31)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2)그들은 네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며 음악을 잘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33)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에 있었음을 알리라.” 그들은 에스겔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가수가 노래하는 것 쯤으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기 이익을 좇아서 행동하고 움직일 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입니까? 무서울 정도로 오늘날 우리 자신 혹은 우리 교회, 우리 주변의 교회들에게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취하고 계십니까? “아, 말씀 좋다.” 하면서도 그냥 그 말씀을 귀로 인조이하는 수준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그것을 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 두려움 가운데서 듣고 여러분 자신을 고치고 회개하며 순종하고 계십니까?

3. 삼계명의 부정적 의미
이제 우리가 볼 것은 말씀 그대로 삼계명이 가르치는 부정적 의미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할 때 먼저 ‘망령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은 몇 가지 뜻을 전달하는데, 첫째는 거짓되게, 둘째는 악한 의도로, 마지막으로 헛되게, 허망하게, 의미없이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A. 거짓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라.
먼저 거짓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2).” 이 말씀은 자기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가져다 대는 행위를 금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삼계명은 거짓말을 믿게 하려는 의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서원의 문제까지도 포함이 됩니다. 서원을 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과 약속을 한 것이니 갚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민 30:2; 신 23:21~23).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뭔가를 말하게 될 때, 자기 자신의 신실함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상황과 약속을 이행하거나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자신의 불확실한 신실함을 증명하려고 하나님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하는 것 자체도 대단히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사람들은 성전이나, 성전의 금이나 제단을 두고 맹세한다는 식으로 말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런 관행에 대하여 일침을 주시며, 맹세를 피하고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마 5:37). 교회 안에서도 다툼이 일어나게 될 때, 이런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B. 악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라.
악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예는 레위기에 나옵니다. 십계명이 주어지던 때, 광야에서 애굽인 아버지와 이스라엘 단 지파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 남자가 싸움 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레 24). 이 경우를 어떻게 해야할지 백성들은 모세에게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처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한 죄였습니다. 단순히 이름만의 문제라면 뭐 그리 큰 사건이겠습니까마는, 이것이 이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모독한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안에서 금하신 온갖 마술과 같은 경우에도 해당이 됩니다. 우리는 오히려 신약성경에서 한 예를 보게 되는데,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많은 능력이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을 보자,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 행하는 것을 따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행 19). 그 때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그렇게 했는데, 그 때 마귀가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늘 너희는 누구냐?” 하면서 그들을 때려 눕히자 그들이 옷을 벗고 상한 몸으로 도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경우 역시 악하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입니다. 비교적 교회 안에서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밖이라면 얼마든지 악의적으로 하나님과 그 이름을 비방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없다’하지 않겠다고 부언하시는데, 이는 인간 세상에서는 그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심판하실 것이고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C. 헛되게, 허망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
어떻게 하면 헛되고 허망하게, 무의미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1). 이 말씀은 주를 부르지만, 헛되이, 허망하게, 무의미하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이 전혀 헛되고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전혀 기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처음에 언급했듯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열심히 부르면서 기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며, 자신이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기에 하나님께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주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능력도 행하고, 설교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구약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한결같이 반복했던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3:16~17을 봅니다. “(1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들이 했던 말들은 듣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했던 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었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이 아닌데도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렘 23:21). 그들은 종종 자기들이 ‘꿈을 꾸었다, 환상을 보았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렘 23:25). 그러나 그들의 말은 다 거짓이었습니다. 그들이 했던 말, ‘하나님의 말씀이다’하는 것은 다 무의미하고 헛되며 허망한 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그들은 그렇게 사용한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하게 교회의 강단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고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은 모든 성도의 몫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와 같이 오늘날 성경에 대한 무지의 만연은 이런 거짓 선지자들, 거짓 교사들의 횡포를 부채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삼계명을 범하는 일은 바로 교회의 수많은 강단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목사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요즘에는 이상한 가르침들이 아무 거침 없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소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너무나 쉽게 그런 말들을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더 심하게는 “하나님이 당신이 이렇게 하라고 내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그런 방식으로 제 멋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다”고 말하는 것도 듣습니다. 이런 일들이 적지 않은 복음주의 내의 목사나 교사들을 통해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우리에게 어떤 부담을 주시거나 사명감을 주시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이런 감동이 있다거나 부담을 주시는 것 같다고 말해야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이 항목에 해당하는 경우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아마 미국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공공연하게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연설을 마치면서 “God bless America!”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욕설과 비속어로 예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을 들먹이는 것까지 너무나 다양하고 그 경우가 많습니다. God bless America!라고 할 때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하시기를 기원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국을 축복해서 어떻게 되었으면 하는 것인가 하면, 테러와 온갖 악재들로부터 자유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이 나라를 축복하셔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며 성경에서도 우리는 그런 것을 지지해줄 수 있는 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미국은 이스라엘도 아니며, 구약 이스라엘과 같은 신정국가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이제 교회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욕설이나 비속어를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종종 우리들도 쉽게 의미없이 OMG 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인가를 묻는다면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조심해야 할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교훈과 적용
하나님의 이름은 이방 신들처럼 자기가 원하는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삼계명을 바르게 순종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입 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바른 경외감으로 하나님을 대할 수 없으며 바른 언어 생활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것들을 논할 때에도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을 학문의 주제인양 다루는 것은 매우 범하기 쉬운 잘못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가장 보편적이고 기초적인 기도 생활에 이 삼계명을 적용해보십시오.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부르십시오. 찬송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으로 정직하게 고백할 수 없는 것을 가사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의미없이, 진정성 없이 부르는 것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지고 하지 않는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헛되게 하는 행위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삼계명을 통해서 우리가 내는 모든 입의 말들이, 특히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을 언급하는 말들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진정한 것들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삼계명의 부언을 주의하십시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56문은 이 부언이 첨가된 이유를 이렇게 해설합니다. “이 계명을 어기는 자들이 사람이 주는 벌을 피한다고 하여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십계명, 특히 삼계명을 이렇게 상고하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의 삶의 기준, 원리를 이 십계명을 통해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아무 두려움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계명의 의미를 이해하고 순종함을 통해서, 귀한 은혜를 더욱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전능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