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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9~101편. 하나님 앞에 잠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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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9~101편. 하나님 앞에 잠잠하라

시편 99~101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6-09

말씀내용
1. 99편은 97, 98편과 함께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100편은 감사의 시라는 표제가 붙었듯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성실하심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내용이다. 101편은 오랜만에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있는데, 아마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시로 보인다.

2. (99편).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통치가 임하면 땅과 산들만이 아니라 모든 만민이 떨 것이다(1). 그 통치는 모든 민족에게 임하고(2), 그분은 거룩하시고 그 이름이 크고 두려울 것이기 때문이다(3). 왕이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공의를 사랑하신다(4).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발 아래 엎드려 경배하는 것뿐이다(5). 사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다면 어떻게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경박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시인은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자로 섰던 인물 세 사람을 들고 있다. 모세, 아론 그리고 사무엘이다(6). 백성들이 이런 인간 중재자들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이신지를 시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기도를 들어 백성들을 용서해주셨지만, 그들의 악행을 인하여 징계를 하시는 하나님이셨다고 시인은 고백한다(8). 왜 시인이 이런 말을 하는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을 이용하여 죄악을 행하는 자리에 가지 말라는 권면이다. 악행을 인하여 하나님은 징계하시기 때문이다. 다시 시인은 그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것뿐이라고 고백한다(9).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런 하나님, 성경에서 설명하고 묘사해주는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겠는가!

3. (100편). 이 시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갈 때 부르기 적합한 노래다. 혹은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천성문에 들어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뵈올 때 부르기 적합한 노래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은 ‘온 땅’을 향해 여호와께 즐거이 부르라고 외친다(1). 하나님은 나만의, 혹은 우리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지으신,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시다. 즐겁게, 기쁨으로 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2~3).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며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고, 그의 기르시는 양이다(3).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근거는 여기에 있다. 이 확신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무슨 근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는가? 무슨 근거로 천성문에 들어가 하나님을 뵙겠는가? 이 확신을 가진 자마다, 감사함으로 그 문?이것은 성전문일수도, 천성문일 수도 있다?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찬송함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 이름을 송축할 수 있다(4). 그가 그 문에 들어가며 그 궁정에 들어가며 하는 말은 이것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5).”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할 때,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천성문을 향할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정말 복된 자이다.

4. (101편). 다윗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이런 결심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통치를 하며,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겠다고 말이다. 그 결심의 내용이 바로 101편에 드러난다.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성품인 ‘인자와 공의’를 노래하겠다고 말한다(1). 하나님의 통치는 공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자와 공의가 놀랍게도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다. 그는 흠없이 온전하게 행하겠다고 결심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한다(2). 더럽고 악한 것을 자기 눈앞에 두지 않을 것이며, 주님을 떠난 자들의 행위를 미워하고 그들이 자기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겠노라고 말한다(3). 비뚤어진(사특한) 마음, 악한 일들을 멀리 하겠다고 말한다(4). 이웃을 헐뜯는 자들이나 오만불손한 자들을 그는 결코 허용하지 않겠노라고 한다(5). 그는 온 땅을 살펴서 충성된 자를 찾을 것이고 그들을 곁에 두고 그들과 함께 일할 것이다(6). 거짓을 행하는 간신배들은 결코 자기 궁정에 거하지 못하게 하겠으며, 자기 앞에 서지 못하게 할 것이다(7). 그는 이런 일들을 한 번 행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새로운 결심을 하고 시행하겠노라고 말한다(8). 결국 하나님의 성에서 이런 악한 자들이 다 끊어지게 되기까지 말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하는 자나 하나님을 떠난 자나 오만불손한 자들과 적당한 거래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다윗은 이 모든 일을 금하겠다고 결심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결단은 무엇이 있는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악과 불의와 죄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노라고 당신은 결단하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결심을 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우리는 우리의 결심 때문에 구원받는 것도 아니며, 우리의 결심대로 살 능력도 없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가 붙잡을 분은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의가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