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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위의 것을 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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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위의 것을 구하는 삶

골로새서 3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10-13

말씀내용
3장(4:1까지). 위의 것을 구하는 삶 (찬 445)

1. 1~2장에서 교리를 다룬 사도는 3~4장에서 실천적인 문제를 다룬다. 실천의 문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라는 전제 위에서 논의된다(1). 신자의 윤리는 거듭남에 근거하는 것이다. 먼저 사도는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한다. 신앙의 본질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2). 하늘에 속한 영적인 것에 마음을 쏟으라는 말이다. 오늘날 당신은 위의 것을 찾는 신자들을 발견하는가? 당신은 위의 것에 초점을 맞추라는 설교 말씀을 듣는가? 땅의 것들로 충만한 기독교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란 전제 조차 무색하게 한다. 참된 성도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고,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다(3~4). 당신은 위의 것을 찾으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영광 중에 나타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2. 사도는 성화의 삶을 먼저 부정적인 면에서 다루기 시작한다. 성화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것이다(5).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과 탐심은 모두 성적 부도덕에 관련된 것들이다. 특별히 탐심은 우상숭배다. 오늘날 성도착적 세상은 얼마나 많은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가? 성도는 마땅히 자신의 마음 속에서 존재하는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여야 한다. 이것이 성화에 있어서 죄죽임이다. 이 모든 것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것이라고 사도는 경고한다(6). 물론 골로새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그 속에서 살아가던 자들이었다(7).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8). 이런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부끄러운 말, 그리고 거짓말과 같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려야 한다(8~9). 여기서 사도가 언급한 것들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피차 맺는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교회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엡 4:15).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다. 교회의 참된 구성원들은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이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10). 그리스도 안에는 아무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11). 그리스도인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성화는 완성된 것이 아닌 진행형이다.

3. 사도는 이어서 적극적인 차원에서 성화를 다룬다. 사도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라는 전제에서 말한다. 칭의 없는 성화는 없다. 신자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한다(12). 사도는 성화를, 옷을 벗고 입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입는 것은 성령의 열매에 속한 성품과 행위들이다(갈 5:22~23). 만일 교회 안에서 불평이나 원망 같은 언짢은 일이 생긴다면 서로 용납하고 용서해야 한다.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말이다(13). 교회 안의 분쟁을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주의 명령을 무시한 처사들이 아닌가! 한편 이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사도는 용서와 용납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한다(14). 사랑은 교회의 하나됨을 온전하게 해주는 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새계명을 언급한 것이다(요 13:34~35).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주장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평강이다. 그것을 위해 성도들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15).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알 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도는 이어서 교회의 예배를 언급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속에 풍성히 거하는 것이다(16). 말씀이 예배의 중심이다. 또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와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함이 있어야 한다. 성도는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사람이다(17).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한 권면처럼 말이다(고전 10:31).

4. 사도는 에베소 교회에게 일상적 삶을 위한 권면을 구체적으로 주었듯이, 그보다는 짧지만 같은 권면을 골로새 교회에게도 주고 있다.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그리고 일터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다. 아내에게는 남편에 대한 복종을,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말 것을 주안에서 명령한다(18~19). 괴롭게 말라는 것은 쓴 마음이나 비통함을 느끼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녀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순종을, 아비(부모)들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말 것을 명령한다(20~21).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종들에게는 상전에게 순종하되 주께 하듯 하라고 명한다. 종들은 상을 하나님께 받을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22~25). 이 말씀은 당시 노예 신분의 신자들에게 삶의 소망을 주었을 것이다. 비록 노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받을 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주를 믿는 상전들은 종이라고 막 대해서는 안 된다(4:1). 자신들도 하늘의 상전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의 상전과 종의 구별은 영원하지도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하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대해주시기를 바라듯이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5. 성도의 삶은 위의 것을 구하는 삶이다. 그것은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그리고 종과 상전의 관계에 다 적용된다. 세상에서 맺는 모든 관계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그 관계 속에서 내가 행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계산하시고 상주실 일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영원 속에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알라.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 가정과 일터에서 주님을 섬기듯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은 자처럼” 살아야 한다. 성도는 땅의 지체를 죽이고 벗어버리는 대신, 새 사람의 성품을 부지런히 입어야 한다. 이것이 부름받은 성도의 삶이다.

6.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요, 하나님께서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게 하신 자답게, 땅의 것에 대한 염려로 살지 않고, 위의 것을 바라고 추구함으로 평강을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마지막 날, 주님의 상을 바라보고 오늘을 살게 하옵시고 용서와 용납과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