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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2편.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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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2편.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구하라

시편 102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6-10

말씀내용
1. 시의 표제에는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라고 되어있다. 시의 내용을 볼 때 그 곤고함은 개인적인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위기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교회가 어려움 가운데 처했을 때 성도가 마음이 상하여 구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2. 1~11절에는 시인의 괴로움이 구구절절이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구하면서(1),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응답하시기를 간청한다(2). 자신은 마치 연기나 내다가 없어지고 마는 인생처럼 느껴지는 것이 시인의 솔직한 심정이고, 뼈는 연기만 내고 타지도 못하는 숯(냉과리)처럼 느껴졌다(3).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마음은 풀처럼 쇠잔해졌다(4). 먹지 못해서 수척해졌고(5), 자기의 모습은 마치 사막에서 고적하게 존재하는 당아새같고, 적막하고 어두운 곳에 있는 부엉이 같고, 뜬 눈으로 지붕에서 밤을 새운 외로운 참새처럼 느껴졌다(6~7). 이것은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다. 주변에는 이스라엘의 형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진 자는 없는 것 같다. 다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국가의 위기 속에서 그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여 견딜 수 없어하고 하나님께 그 마음을 토로한다. 교회가 쇠잔해갈 때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는 참으로 적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오늘날도 그렇지 않은가? 원수들은 무너지는 교회를 보며 그리고 그런 교회를 인하여 마음 상해하는 나를 훼방하고 저주한다(8). 시인은 재를 뒤집어 쓰고 있고, 재라도 삼키고 싶은 심정이며 마른 목을 축이려고 하면 흐르는 눈물을 삼키지 않을 길이 없었다(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범죄함을 인하여 노하셨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10) 시인은 인생이 기우는 그림자와 풀의 쇠잔함같다고 고백한다(11).

3. 이렇게 깊이 탄식하면서도 시인은 자기의 믿음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장래에 베푸실 은혜에 대한 비전이다. 12~28절에는 이런 믿음의 증거들이 제시된다. 비록 인생은 그림자와 풀과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고 그 이름도 영원하시다(12).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 곧 ‘정한 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13). 정한 기한이 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실 것이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때에는 시온에 있는 보잘것없는 존재들 조차도 기쁨이 될 것이다(14). 이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교회의 가장 보잘것없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기쁨으로 섬기는 그림을 보여준다.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앞에서 시온 곧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에(16), 열방이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고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게 될 것이다(15). 마치 방안에 촛불이 켜지면 창문을 통해서 밖의 어둠 속으로 그 빛이 새나가듯이 교회 안에 다시 밝혀진 빛은 교회 밖 세상으로 흘러나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시인은 하나님께서 가장 빈궁한 자처럼 여겨지던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교회를 회복시켜주실 것을 확신한다(17). 이런 이야기는 이제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될 것이다(18). 나의 신앙은 다음 세대에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된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성소에서 땅을 하감하시고 갇힌 자와 같은 인류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저들 마치 ‘죽이기로 정한 자’들을 해방시키시는 구원을 베푸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19~21; 엡 1:6,14). 그 때 이스라엘 만이 아니라 많은 민족들과 나라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22). 지금까지 시인이 말한 것은 믿음으로 장래의 은혜를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자기의 처한 형편을 보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인생의 중반에 쇠약하게 하셔서 수명을 짧게 만드셨다(23). 그래서 그는 자기를 중년에 데려가지 마시기를 구한다(24). 슬픔으로 가득 찼던 자기의 인생을 이제는 편케 해주시기를 구하는 시인의 마음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누구나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그는 알고 있다(24b~2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수명을 어떻게 결정하시든지 그가 아는 것은 자기의 후손들이 영원히 주의 앞에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장래 자기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형통함을 누리게 될 것을 그는 안다(28).

4. 교회의 미래는 장기적으로 보면 낙관적이다. 그러나 당장의 교회의 형편을 바라볼 때 낙심하게 하고 시인처럼 탄식하게 하는 상황은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런 시대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할 것은 시인처럼 교회의 상태로 인하여 탄식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기도에 응답하사 정한 때에 교회에 다시 찾아오사 교회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바로 ‘빈궁한 자’의 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되기를 구하라. 이것이 당신의 기도의 최우선순위가 되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