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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장. 불의한 시대를 살았던 한 의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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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1장. 불의한 시대를 살았던 한 의인의 이야기

열왕기상 21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6-10-17

말씀내용
21장. 불의한 시대를 살았던 한 의인의 이야기 (찬 432)


1. 아합은 수도 사마리아 외에 이스르엘에도 왕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근처에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했다. 이것은 십계명의 열 번째 계명,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는 일이었다. 자기에게 값을 주고 팔라는 아합의 요구에 나봇은 포도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므로 팔 수 없다고 거절하는데, 이 말은 나봇의 믿음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의인의 믿음이 당대에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보여준다.

2. 아합의 탐욕은 모든 이들의 탐욕이 그렇듯 채워질 줄 몰랐다. 아합에게 왕권은 탐욕을 원하는대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봇은 아합과는 대조적인 인물이다. 나봇은 불신앙의 시대, 우상숭배와 배교의 시대에 자기 믿음을 가지고 살던 신실한 남은 자의 모습을 대변한다. 아무리 시대가 어두워져 가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남겨두신다(19:18). 나봇은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과 자기에게 주신 ‘기업’을 지키려고 하였다. 그도 물론 왕의 호의를 얻을 기회와 두둑이 땅값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왕에게 미움을 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예상했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하나님께서 금하신다’고 거절한다. 이것은 타협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타협할 문제가 아니다! 나봇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나오자 유약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왕 아합은 몸져 눕는다.

3. 상황을 파악한 이세벨은 조금의 주저나 망설임도 없이 극악한 음모를 꾸미고 실행한다. 나봇의 성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왕의 인을 쳐서 편지를 보내, 나봇에 대하여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할 불량자 둘을 세워 그 죄목으로 돌로 쳐 죽이라는 지시였다. 이세벨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하나님의 율법 조항들에 맞추어 음모를 꾸몄다는 것은 놀랍다(민 35:30; 신 17:5~6; 19:15). 하나님보다 왕과 왕의 부인을 더 두려워했던 장로와 귀족들은 이 참람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금식을 선포하는 거짓까지 행하면서 이세벨의 분부를 수행하여 의인 나봇을 돌로 쳐 죽였다.

4. 하나님은 엘리야를 명하여 흥분해서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가는 아합을 만나게 하셨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여로보암이나 바아사의 집 같이 멸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고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먹어 땅에 묻히지도 못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한다. 성경은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가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고 지적하지만(25) 그렇다고 아합의 죄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는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기’ 때문이다(26).

5. 이 말을 들은 아합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다녔다(27). 이것은 회개의 표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태도를 보시고 재앙을 그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다음 세대에 내리겠다고 말씀하셨다(29). 그렇다면 아합은 정말 회개했는가? 그의 이후의 모든 행적을 보건대 그의 회개는 진정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의 겸비함을 인하여 심판을 연기해주셨는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의 삶을 특별히 길게 조망하면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무궁하심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나님은 이 악한 왕에게 어느 왕보다도 더 많은 선지자를 주셨고, 게다가 구약 역사 최고의 선지자라 할 엘리야를 보내주셨고, 참고 참으시면서 기회를 제공해 주셨다. 매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했다. “가식적인 회개가 그의 집에 심판의 일시 유예를 가져왔다면, 신실한 회개는 그의 집에 의롭다함을 가져왔을 것이다.”

6. 탐욕과 권력(재력)의 위험을 알라. 우리 안의 탐욕의 정체를 보지 못하면 위험하다. 그 정체를 모른 채,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는 것은 더 위험하다. 우리 안의 탐욕의 정체를 알고 그것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복되다. 탐욕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대상이다(갈 5:24). 죄를 이기는 방법은 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언지하에 ‘하나님이 금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봇이 했던 것이 이것이다. 아합과 앉아서 차를 마시며 오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이것은 발람의 태도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언지하에 끊어버렸다. 죄와 대화하지 말라. 나봇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키려고 감당한 희생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 복된 믿음의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기업,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손해를 무릅쓰고 살아가는가? 보배로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은 당신의 삶을 조정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믿음을 조정하지는 않는가? 믿음의 타협을 시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나봇은 물질적인 이익을 희생하고 통치자의 진노를 감수할 정도로 하나님의 법을 깊이 경외했던 사람이었다. 오늘과 같은 불신앙의 시대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그 시대를 탓함으로 자신의 타협을 무마하며 살도록 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셨다.

7. “하나님 아버지, 저희와 저희 가정, 그리고 온 교회의 성도들이 불의한 시대에 살았던 의인 나봇과 같이 영적 유업인 보배로운 믿음을 지키고 살게 하시되, 죄의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경외하는 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