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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7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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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7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는 사람들

시편 107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6-15

말씀내용
107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는 사람들 (찬 371)

1. 시인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형편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면서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인자하심과 기이하심을 보이신 하나님을 찬송한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자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들(4~9), 쇠사슬에 묶인 죄수 같았던 형편(10~16), 병든 사람과 같이 죽음을 기다리던 모습(17~22), 푹풍에 시달리는 선원들과 같은 형편(23~32)들이다. 우리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바로 우리들의 상황이 그 어느 것에 대입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시편 기자가 고백하고 찬송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8,15,21,31)? 시편을 읽을 때마다 시인들이 고백하는 그 한결같은 내용,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은 영원하심이로다”라고 나 자신이 고백하는가 묻게 된다. 얼마나 깊은데서 나오는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찬송이 내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그치지 않게 해주시기를 구하게 되지 않는가? 이런 찬송을 매일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2.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40년의 경험을 해야 했다. 시인은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한다(4~9). 그들은 목적지를 찾지 못해 방황하였고, 주리고 목말랐고 영혼은 피곤하였었다(4~5).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은 고통에서 그들을 건지셨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다(6~7). 시인은 그 고생이 아니라 그 고생을 마치고 거할 성에 마침내 이르게 하신 그 은혜를 찬송한다. 시인이 경험한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을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다(9).

3. 이스라엘은 또 쇠사슬에 매인 죄수 같은 역사를 경험하였다(10~16). 바벨론 유수이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함이었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었다(1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수고와 고생으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다(12). 하나님은 어느 정도로 낮추시는가 하면 돕는 자가 없도록 낮추신다. 그래야 죄인의 심령은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13). 하나님은 아무도 도울 수 없다고 포기하고 낮아진 인생을 찾아오셔서 구원하신다(13~14). 아무도 깰 수 없다고 생각했던 놋문을 깨뜨리시고, 쇠빗장을 꺽으심으로써 말이다(16).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기이하심이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4. 병든 자처럼 죽음 밖에는 기다릴 것이 없는 형편이 또한 이스라엘이 경험한 역사였다(17~22). 왜 이런 고생을 하는가? 그들의 범과와 죄악 때문이다(17). 하나님께서 이들을 고치시는 방법이 놀랍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신다(20).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치료약이다. 시인은 그것을 경험했고 시편 119편은 바로 그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고 있다.

5. 마지막으로 시인은 바다에서 항해하며 풍랑으로 고생하는 선원에 비유한다(23~32). 이스라엘 사람들은 항해를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바다는 매우 신비로운 영역이었다. 그 바다에서야말로 하나님의 행사와 기사를 보기 좋은 곳이라고 여겼다(24). 하나님께서 광풍을 일으키시자 배는 파도를 따라 하늘까지 올라갔다가(시적 표현이다) 깊은 곳으로 내려진다(25~26). 뱃사람들은 이리 저리 구르고 비틀거리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27~28).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건지시며 광풍을 평정하시고 물결을 잔잔케 하신다(29). 그리고 저희는 평온한 중에 저들이 원하던 항구에 어느 새 도착하게 된다(30).

6. 시인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묘사한다(33~42). 하나님은 강을 광야로, 샘을 마른 땅으로, 옥토를 염밭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33~34). 이뿐인가! 반대로 광야를 못이 되게 하고 마른 땅으로 샘물이 나게 하시고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거할 성을 풍성한 것을 얻고 누리게 하시는 분이시다(35~38). 그러나 그러다가도 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주시기도 하신다(39~40). 이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골라내시고 양무리 같이 인도하시며 보호하신다(41). 고난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게 하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구인지를 구별해내는 도구다. 광야에서, 사슬에 묶여서, 병고로 인하여, 그리고 풍랑 이는 바다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연단하시고 구별해내시는 분이시다.

7. 그래서 시인은 이 이야기를 하나의 교훈으로 삼아 권면하고 있다(43). “지혜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인생에 광야가 있다고 해서, 답답한 시절이 있다고 해서, 병고가 심하다고 해서, 풍랑이 많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자. 도리어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평안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도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찬송할 뿐이다.

8. (사족) 이스라엘이 고생을 한 이유를 시인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람이 고생을 할 때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쉬운 고로 그저 고난에서 구원받기를 부르짖을 뿐, 참으로 회개함으로 주께 나아가는 자들이 심히 적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편에서 얻는 교훈 중 하나는 아무리 비참한 고난 속에서라고 할지라도, 자기의 죄악을 돌아보고 회개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러 나아가는 자의 자세인 것이다.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결코 회개할 수 없다. 자기의 죄악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9. “하나님 아버지, 고해 같은 세상을 살면서 저희가 겪는 모든 역경이 저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희를 낮추고 저희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역경을 통하여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니 감사하며 찬송하나이다.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저희에게 행하신 기적을 보는 눈을 열어주사 불평과 원망 대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만을 돌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