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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장.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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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장.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호세아 1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7-10-28

말씀내용
1장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 (찬 299)

1. 호세아 선지자의 활동시기는 주전 8세기 후반이다. 이 시기는 남왕국 유다에서는 웃시야(주전 767~739), 요담(주전 739-731), 아하스(주전 731~715)에서 히스기야(주전 715~686)로 이어지는 때이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로부터 마지막 왕 호세아(주전 732~722)까지 즉 이스라엘의 멸망 때까지의 시기다(1) 히스기야가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는 이스라엘 멸망 후에도 잠시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세아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왕들의 이름을 먼저 기록하는 것은 그도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윗 왕의 계보의 정통성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이후의 마지막 왕들,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은 이들이 반역으로 왕위를 찬탈하여 혼란과 멸망을 초래한 정통성이 없는 왕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이 음란한 아내를 취해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2). 여기서 ‘음란함’은 마음 보다 행동을 가리키는 단어인데, 음란한 아내라는 말은 창녀를 아내로 삼으라는 말과 같다. 호세아 선지자가 아내로 삼아야 하는 여인의 이름이 디블라임의 딸 고멜이라고 언급된 것은, 이 명령이 상징이나 비유가 아닌 실제 명령이었음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을 했을 것이다.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처럼, 도덕적으로 불합리한 명령으로 여겨진다.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아내를 취하는 것이 불법적인 일이라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부정하고 음란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결혼하신다는 개념은(2:16,19,20) 더더욱 불법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순결하였던 고멜이 결혼 후에 음란하고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보는 해석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3. 호세아 선지자는 고멜과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다(3~11). 첫째는 아들 이스르엘인데 이 이름은 축복의 이름인 이스라엘(‘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겼다’는 의미)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의미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뜻이다. 이스르엘은 아합의 집안이 예후에게 멸망했던 지명인데, 예후가 아합의 집을 멸하고 바알 신당을 없앨 때(왕하 10:19~24) 하나님은 그를 칭찬하여 4대를 이어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셨다(왕하 10:30). 그래서 호세아의 첫 아들 이스르엘은 예후 왕가가 4대만에 망하게 될 것,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을 것이라는 예언적 의미를 지닌다(4). 예후의 4대는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다. 그후 호세아는 고멜에게서 딸을 낳게 되고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6). 이는 ‘긍휼을 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멸하시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남왕국 유다는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것이다(7). 결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여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후 70년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이 구원은 결코 칼과 활과 전쟁, 마병이나 말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호세아가 셋째로 얻은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고 하셨다(9).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호세아의 세 자녀의 이름을 순서대로 보면, 처음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의미의 이스르엘, 둘째는 하나님이 긍휼을 거두어가시겠다는 로루하마, 세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과 똑같이 취급하시겠다는 로암미, 결국 호세아의 메시지는 점진적으로 강도를 더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말씀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 것이 은혜다. 하나님은 이제 호세아에게 회복의 말씀을 주신다(1:10~2:1). 이스르엘은 분명히 저주의 땅이고 저주의 이름이지만, 이제 이스르엘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하나님이 심으신다’는 의미다. 이스르엘의 날은 위대한 날이 될 것이다(11). 하나님이 새롭게 그들을 심으실 것이다(2:23). 로암미는 암미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고, 로루하마는 루하마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것이다(2:1). 이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애통하는 회개가 요구된다. 이 회개가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이제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실 것이다.

5.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자녀들을 낳아서 축복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는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호세아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창녀 같은 백성을 사랑하여 친히 그들의 남편이 되어 주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호세아의 이름은 여호수아, 예수의 이름과 동일한 이름이다. 예수님께서 구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신랑이 되실 것을 그의 삶과 메시지는 보여준다. 예수님은 친히 음란한 아내를 맞아 그를 사랑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 이야기다. 호세아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가르치신다. 이것이 호세아서다.

6.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불순종과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푸사 여기까지 오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옵나이다. 호세아서를 통하여 그 은혜와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깨달아 아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