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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45-176. 이 모든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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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45-176. 이 모든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시편 119:145-176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6-28

말씀내용
119:145~176 이 모든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찬 205)

1. 145~152절은 ‘코프’로 시작하는 구절들인데 특별히 ‘부르짖는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145, 146, 147) 그만큼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낸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한 것이(약 5:16) 무엇인지 이 기도가 잘 보여준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인은 자기가 주의 율례를 지키겠다고 말한다(145~146). 그는 주의 말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부르짖는다(147). 그는 거의 밤을 지새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148).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언제나 병행하는 것이다. 참된 성도의 삶은 이 두 가지가 종과 횡으로 엮어져 있는 삶이다. 우리는 얼마나 이 면에서 균형을 잃어버리곤 하는가? 기도가 응답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될 것을 그는 안다(149). 언제나 악을 좇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먼 자,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자다(150). 어떻게 시인은 “주께서 가까이 계심”을 아는가(151)?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토록 가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다. 그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는 자다. 그리고 그는 안다. 이 모든 말씀과 증거가 하나님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이기에,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을 안다(152).

2. 153~160절은 히브리 알파벳 ‘레쉬’로 시작하는 절들이다.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멸시하는 자들(궤사한 자들)에 대한 호소가 여기에는 많이 나타난다. 시편 기자는 고난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데,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보편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했다(딤후 1:8). 고난 속에서 건져주시기를 구하면서 자신이 주의 법을 잊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시인의 믿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153).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기에 기도하고 그 말씀(약속의)을 붙잡는 것이다. 그는 자기 영혼을 소성케 해주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있다(154,156,159). 악인이 구원을 바랄 수 없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155). 주변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를 찾을 수 없다(157~158). 그러나 시인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붙잡는다(159~160).

3. 161~168절은 ‘쉰’으로 시작하는 절들이다. 아무리 핍박이 거세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 사람들이다. 방백들의(지도자들이 핍박하면 더 고통스럽다) 이유 없는 핍박은 힘들다(161).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 경외한다. 사람들이 떼돈을 번 것처럼 그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동시에 거짓도 사랑할 수 없다(163).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나 의로운지 그는 하루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송한다(164).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리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로다(165).” 얼마나 아름다운 구절인가? 평안이 있고 장애물이 없다는 말은 고난과 환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어떤 환난과 고난도 상황적 요인도 성도에게 주시는 큰 평안을 깰 수 없고, 그 인생에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거룩한 뜻에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상황의 문제가 아니다. 시인은 자기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168).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한 순간이라도 살 수 있겠는가?

4. 이제 시편 119편의 마지막 단락인 169~176절은 히브리 알파벳의 마지막 자인 ‘타우’로 시작하는 절들이다. 이 내용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에만 의지하는 영혼에게 분별력과 도움과 은혜를 베풀어주십사 하는 간구로 마친다. 그는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169~170).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때마다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다(171~172). 시인은 하나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은혜와 신령한 교제를 더욱 사모한다(174).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뻐할 수 없다. 바른 신앙에서 기도와 말씀은 병행한다. 깊은 겸손 가운데 길 잃은 양 같은 자신이 목자의 눈에 발견되고자 하는 마음이 이 놀라운 시편의 마지막 구절을 장식하는 것은 실로 놀랍다(176). 그러나 이것은 신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신앙, 참된 신앙은 성도를 이런 겸손으로 이끌고 간다.

5. 시편 119편을 이제 우리는 다 상고했다. 이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사람의 고백으로 주어졌다. 우리 모두가 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깊이 경험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자. 그리고 이 말씀을 모두 내 인생에 경험하게 하옵소서 라고 구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는 은혜를 구하자.

6.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깊이 경험한 시인의 이 모든 고백들이 저희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과 동행하고 말씀을 더 사랑하고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