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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교회 공동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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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장.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교회 공동체의 삶

에베소서 4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10-04

말씀내용
4장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교회 공동체의 삶 (찬 600)

1. 성도가 은혜로 인하여 얻은 구원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교회의 비밀을 설명한 사도는 이제 4~6장에서 그 교훈을 적용하여 권면한다. 그것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거룩하고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그 신분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한다.

2. 먼저 4:1~16절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적용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강조하셨던 내용이다(요 17). 이것을 제일 먼저 다룬다는 사실은 우리로 그 중요성을 헤아리게 한다. 교회의 하나됨은 영적 전쟁이라는 큰 그림에서(6장에서 말하게 될) 이해해야 하는 문제다. 여기에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사랑 안에서 용납함이 요구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께서 이미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것이 요구된다(2~3). 교회의 하나됨은 그리스도께서 장벽을 허물어 하나로 만드셨고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셨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이 값비싼 하나됨을 힘써 지켜가야 한다. 근거는 분명하다. 성령님,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몸도, 소망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다.

3. 하나님께서는 하나됨을 지켜나가도록 교회에 은사를 주신다. 8절에서 사도는 이것을 로마의 개선행진에 비추어 설명한다. 8절은 시편 68:18의 인용이다. 승리하고 개선한 장수가 함께 싸운 군인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듯이,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그 선물을 주신다. 그것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라는 지도자 직분/은사들이다(11).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을 주심으로써 교회를 굳게 세우신다. 이 지도자 직분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고 그들이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라고 주신 선물이다(12). 어떻게 그 일을 하는가? 이 직분들은 모두 말씀의 직분들이다. 정경으로서의 계시가 완성된 이후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받는 사도, 선지자의 직분은 폐하여졌고, 오늘날의 교회에는 복음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목사-교사’라는 한 직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의 직분이 주어진다. 복음 전도자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빌립 집사나(행 21:8) 디모데에게만(딤후 4:5) 사용된 직분인데, 특별한 의미에서 세워진 순회 복음 전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또 목사와 교사가 말씀으로써 성도들을 세우면 성도들은 교회를 세운다는 원리를 본문은 가르친다. 이런 원리로 볼 때, 성도들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한다(13).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됨이 없이 참된 ‘서로 사랑’은 불가능하고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이렇게 교회가 세워질 때 교회는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 등에 흔들리지 않는다(1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들은 그 지체다. 그들은 ‘서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 진리를 말해야 한다(15). 크리소스톰이 말한 대로, 눈이 뱀을 보고서 발에게 말하기를, 저것은 막대기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는 뱀에게 물려 죽게 될 것이다. 몸 안의 지체들이 서로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죽이고 허무는 일이 된다. 교회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써 하나가 되고 성숙해진다.

4. 사도는 이제 성도들 개인이 어떻게 부름에 합당하게 덕을 세우며 살아갈지를 더 다룬다(17~32). 이 문제도 교회 공동체의 범주에서 다루어진다. 17~19절은 불신자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는 허망한 것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므로 총명이 죄로 어두워져 있으며 영적 감각이 없으므로 자신을 방탕과 더러운 것에 던지게 된다. 신자는 이렇게 살 수 없다. 이와 대비되는 신자의 삶은 20~24절에 설명된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이다. 신자는 단지 교리를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배우는 사람이다. 모든 성경의 가르침과 교리는 다 그리스도를 가리키므로, 신자는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21). 그리스도를 배운 성도는 유혹의 욕심이나 썩어질 것을 추구하면서 살 수 없다. 그는 마음이 새롭게 되었고 하나님의 가치인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새롭게 지음 받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5. 새 사람의 삶을 위한 지시들이 나온다(25~32). 다시 사도는 지체 간에 서로 거짓을 버리라고 말한다(25). 우리가 하는 말을 돌아보라. 사도는 분을 내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분을 품고 밤을 지내지 말라고 말씀한다(26). 마귀가 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27). 화가 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밤새 분노를 풀지 않는다면(이것은 명백한 불순종이다), 온갖 쓴 뿌리, 복수, 악의, 용서하지 않는 영, 원한, 적의, 과민함 등이 틈을 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도적질하는 대신 남을 섬기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라는 권면은 성도에게 노동의 목적을 가르쳐준다(28). 성도는 호의호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섬기려고 일해야 한다. 사랑이 성도의 노동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말은 덕을 세우도록 은혜롭게 해야 하는데, 베드로 사도의 권면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해야 한다(29; 벧전 4:11). 성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라는 소명을 언어 생활에서도 이루어야 한다. 이 큰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다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들을 그쳐야 한다(30).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말다툼이나 소리지르는 것), 비방하는 것(욕설)을 모든 악한 마음과 함께 내어버려야 한다(31).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생각하고 서로 친절히 행하고 불쌍히 여기며 용서해야 한다(32). 이것이 신자, 곧 성도의 도리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함에 이르고, 하나됨의 풍성함을 누리도록 기도하자.

6. “하나님 아버지, 복음과 부르심의 영광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교회 공동체의 삶을 축복하여 주사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되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부요한 은혜와 복락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교회와 교회의 삶을 통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