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새벽말씀묵상

Home > 새벽말씀묵상 > 빌립보서 3장. 우리는 순례자다

빌립보서 3장. 우리는 순례자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빌립보서 3장. 우리는 순례자다

빌립보서 3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10-09

말씀내용
3장 우리는 순례자다. (찬 191)

1. 사도는 다시 기뻐하라고 말한다(1). 기쁨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가지는 표준적 반응이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은혜를 생각하고 묵상할 때 받은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가 말하는 기쁨은 감상적이고 피상적인 기쁨의 시늉이 아니다. 기쁨은 은혜의 증거다. 사도는 이어서 빌립보 교회가 조심해야 할 것들을 경고한다.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모두 같은 말이다(2). 빌립보 교회는 이들의 기만을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는 분별력을 주시길 기도했다(1:10).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참된 할례파)은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다(3). 육체를 자랑하려고 하면 사도 자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순수 정통 유대인이다(4~6).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해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7)?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이다(8).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에 사도는 모든 유익하던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다. 그 분을 얻고 그 안에서 자신이 발견되려면 이런 자랑들은 내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9). 사도는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살기를 원했고 그럼으로써 부활에 이르기를 바랬다(10~11). 부활의 영광만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도 본받고 거기에 참예하고자 했다. 당신도 그런가? 사도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얻은 자로서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빌립보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께 더욱 붙잡힌 바 된 삶을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상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이다(12~14). 15절에서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라는 말은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는 사도의 말과 모순되는 것인가? 이 말은 자기가 온전히 이루었다(성숙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은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아직도 푯대를 향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이다. 사도는 이 모든 일에서 그들의 본이 되어 왔기에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다(17). 사도는 다시 빌립보 교회가 주의해야 할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아끼지 않는다(18~19). 그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그들은 멸망 당할 자들이며 먹는 것을 위해서 즉 배를 채우기 위해서 사는 자들일 뿐이다. 사도는 이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편지를 쓰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라고 권면한다(19).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들의 시민권(소속)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이다(20).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살겠지만, 하늘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 하늘을 기다릴 일은 없다. 그날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이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우리의 낮은 몸(육신)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하게 될 것이다(21).

2. 그러나 우리는 아직 길 위에 있다. 우리는 순례의 여정 중에 있다. 순례자에게 무거운 짐은 축복이 아니다. 이 세상의 자랑거리들, 육체의 자랑은 다 순례자의 여정을 방해하는 짐들이다. 그것들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이 순례의 여정을 제대로 걸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다. 순례자의 눈은 언제나 하나님 계신 곳을 향하고 있다. 그의 말, 행동, 여정의 모든 목적은 순례의 목적지를 향한다. 이 믿음의 여정은 점점 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는 삶이며, 점점 더 그리스도께 붙잡힌 바 되어가는 삶이다. 이 여정은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을 향해 푯대를 바라보고 걷는 삶이다. 이 시선이 분명하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원수가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모든 성도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넘치는 위로다. 거기에는 우리를 기다리고 반겨주실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 아버지, 저희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알고 이 땅을 나그네와 순례자로 살게 하옵소서.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권능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리스도께 더 붙잡힌 바 되는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