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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진짜 은혜 받은 증거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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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7장. 진짜 은혜 받은 증거는 이런 것이다.

누가복음 7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2-21

말씀내용
7장. 진짜 은혜 받은 증거는 이런 것이다. (찬 452)

1.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사건과(1~10)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사건(11~17)은 주님의 은혜가 백부장 같은 지위에 많은 사람의 신임을 얻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방인이었던 사람에게나, 비참한 삶을 벗어날 길이 없던 과부로서 외아들까지 잃어버린 여인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 재산을 기부하여 가버나움에 회당을 지은 백부장은 유대인의 신임을 얻고 있었기에 유대인의 장로들이 대신 예수님께 나아와 그의 종을 고쳐주시기를 구했다(4). 주님께서 그 집에 도착하실 무렵, 백부장은 다시 벗들을 보내어(종들을 보낸 것이 아니다)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시거나 자기가 주님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하면서 말씀만으로 종을 고쳐달라고 청하였다(6~7). 주님께서는 그의 청대로 종을 고치셨고,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그를 칭찬하셨다(9). 주님은 이어 나인성으로 가셨는데, 거기서 과부의 죽은 독자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을 보시고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다. 이 여인은 주님께 간청하지도 않았지만 주님께서는 그녀를 불쌍히 여기사 그녀의 구하지 않은 소원을 성취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자격을 갖추거나 조건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으로만 주어진다. 인간은 어떤 지위와 권세를 가졌든지 어떤 처지에 놓였든지 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오늘 내가 바로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다.

2.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예수님께서 진짜 메시아신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그것을 묻게 하였다(18~23). 주님은 당신의 하시는 일들이 이사야 61:1~2의 성취임을 말씀하심으로써 메시아이심을 확인시켜 주신다. 의심과 불신은 다르다. "의심은 마음의 문제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 왜 그런 일을 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불신앙은 의지의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일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의심은 반드시 그 사람이 틀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말이다. 주님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 무리들에게 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광야에 나간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요한을 보러 나간 것이었다. 그들은 부드러운 옷 입고 궁궐에 있는 사람이 아닌 약대 털옷을 입은 거친 사람 요한을 보러 갔었다. 그는 선지자였다. 구약의 어떤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고 주님을 직접 보고 소개했다는 점에서 요한보다 나은 선지자는 이전에 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사역을 다 알고 믿는 세대 중에서는 극히 작은 자도 이렇게 의심하는 세례 요한보다 더 나은 은혜를 입고 사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나 끝까지 세례 받기를 거부했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에 대하여 주님은 피리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도무지 장단을 맞추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셨다(32). 참 지혜는 그 지혜에 복종하여 지혜를 좇는 자들인 요한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그 옳음이 입증된다(35).

3.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36~50) 이것은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바,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예수님의 장사를 준비했다고 칭찬을 받은 사건과는 다른 사건일 것이다. 주님은 시몬이란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고 이 여인은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묘사된 것으로 보아 아마 창녀였을지 모른다. 이 당혹스러운 사건은 바리새인 시몬과 죄인인 여인을 강렬하게 대조시킨다. 주님은 두 사람의 태도를 비교하심으로써 신앙의 도리를 가르쳐주신다. 주님을 더 사랑한 사람은 여인인데, 그것은 더 많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믿음이라고 표현하신다(50). 바리새인 시몬은 자기가 주님을 대접하고 있으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겠지만(이런 인식과 자세는 은혜를 부정한다!), 여인은 자기가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여겨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고 발에 입을 맞추었다. 이 여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는 물론, 여인 자신도 스스로 자격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겠지만 주님은 이 여인을 높이셨고 칭찬하셨다. 은혜는 이런 자의 것이다.

4. 은혜를 받은 증거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은혜를 받아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바리새인 시몬처럼 자기의 옮음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지 않는다. 자기가 주님을 대접하고 있다거나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뭔가를 해드리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사역자들의 위험이 여기 있다. 은혜받은 사람은 겸손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주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지 안다. 그래서 은혜받은 자들은 하나 같이 말이 없다. 백부장은 주님 앞에 설 자격 조차 없는 이방인임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나인성 과부도 한 마디 말이 없다. 죄인인 여자도 그렇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백부장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은 인물이었고, 죄인인 여인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둘 다 은혜를 입었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는가가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 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높이는 교만한 자를 주님은 대적하고 낮추신다. 당신은 은혜 받은 자인가? 당신에게는 은혜 받은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5.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 당연하고 대단한 것 처럼 여기지 않도록 은혜를 주옵시고, 백부장이나 은혜를 입은 여인들처럼 저희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고 은혜 받은 대로 일평생 감사와 감격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