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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 표류하지 않는 신앙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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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장. 표류하지 않는 신앙의 중심

히브리서 2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11-07

말씀내용
2장. 표류하지 않는 신앙의 중심 (찬 546)

1.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함으로 믿음에서 표류하지 말라고 권고한다(1). 믿음에 견고히 서는 길은 ‘들은 것’ 즉 복음의 모든 진리를 더욱 붙잡고 그것을 더욱 간절히 주목하는 것이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이라는 말은 목적 없이 떠내려감으로써 정박할 곳을 놓쳐버리는 배를 묘사하거나 또는 손가락에서 빠져버린 반지 혹은 깨진 항아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말이다. 위대한 복음의 진리도 이와 같이 놓쳐버릴 수 있다. 말씀에 헌신하지 않는다면 다른 물살에 휩쓸려 무한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들은 것’(복음의 진리)을 마음에 깊이 그리고 굳게 간직해야 한다. 모든 들은 것을 꽉 붙잡으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은 천사의 중보를 통해 받은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이해했고 신약의 저자들에게서도 이것이 발견된다(살 3:19; 행 7:53).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공정한 처벌을 받았다면, 천사보다 우월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전해주신 ‘이같이 큰 구원’의 복음을 경멸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transgression and disobedience)’에서 전자는 선을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는 것을 말한다(2). 즉, 전자는 지나친 범죄(an overt sin of commission)이고 후자는 소극적 범죄(a sin of omission)다. 이토록 중요한 구원의 복음의 메시지는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다양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합당한 반응-순종-을 보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 메시지에 헌신했다. 히브리서 기자도 직접 예수님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은 사람은 아니었다(‘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3절). 그와 독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씀에 헌신하여 확증하여 준 것을 받았다. 그러나 말씀의 진실성은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준 사람들의 증언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표적과 기사 그리고 여러 능력들로 그 말씀을 확증하셨다(4). 이것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그리고 사도들의 기사에서 나타난 일들이었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2. 오는 세상은 다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한다(5~13). 당시 쿰란 종파는 두 명의 메시아적 인물 즉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각각 맡게 될 인물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 둘은 모두 종국에는 천사장 미가엘의 권위에 종속할 것이라고 믿었다. 즉, ‘장차 오는 세상’(5)은 결국 천사들의 권위에 종속하게 된다는 신학적 관점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정면으로 이 사상을 반박하면서 세상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종속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장차 올 세상’은 무엇인가? 그 세상은 성격상 1:2의 ‘이 모든 날 마지막’과 같은 것이다. 물론 미래에 속한 것이지만, 그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즉 그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서다. 구원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다. 아들은 새 시대의 개막을 여는 분(an inaugurator)이시다.

3. 구원의 새 시대를 여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그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17절).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보다 우월하시지만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기꺼이 좌절과 고난으로 위협받는 우리의 인성을 짊어지셨다. 시편 8편을 인용하여 기자는 예수님이 우리의 인성에 전적으로 동참하셨음을 보여준다. ‘예수를 보니’(9)라는 구절은 시편 인용의 절정이다. 주님은 인성을 입으셨으나 죄와 반항의 특성을 가지지 않으셨지만 우리의 고난은 취하심으로 고난으로 허우적대는 우리 연약함을 아신다. 주님은 죽음을 맛보셨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가장 비참한 상태까지 경험하셨다(9).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의 선구자가 되심으로 그를 아는 자들로 두려움을 이기게 하신다.

4. 그리스도의 사명을 이어서 말한다(10).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실 충분한 자격을 얻으셨는데, 구원의 길은 고난을 통한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고난을 통해서 온전함에 이르게 되셨다. 성화는 히브리서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10:14,29; 13:12). 우리는 정결케되었을 뿐 아니라(1:3) 이제 그분과 함께 거룩해지는 은혜를 입었다. 우리를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셨고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며 함께 하나님의 집에서 나누는 교제를 기뻐하셨다(11~12).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제요, 자녀가 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누릴 수 있다(13).

5. 히브리서 기자는 또한 우리의 해방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한다(14~18). 그리스도는 사망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마귀를 정복하사 죽음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을 그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셨다(14~15). 성도는 이 은혜를 삶에서 누려야 한다. 어떤 이의 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죽기를 꺼려하는 이는 충분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아직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했으며, 이 세상을 장차 올 세상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기꺼이 죽을 수 없는 이가 그리스도인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자비를 나타내심으로써 우리를 도우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자비하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으로서 백성의 죄를 구속해주셨다(17). 그는 우리를 향하여 자비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충성되시다.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을 향한 제사장 사역의 온전한 양면이다. 우리와 같이 시험을 당하시고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시험 받는 우리 연약한 인간들을 능히 도우신다(18). 그는 능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 능력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당신은 매일의 유혹과 위험 속에서 이런 그리스도를 날마다 의지하고 살아가는가? 당신은 주께서 주신 복음의 모든 진리를 더욱 붙잡음으로써 신앙의 표류를 막고 있는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

6.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들은 모든 복음의 진리를 굳게 마음에 새기고 붙잡음으로 저희 신앙이 한시도 표류하지 않도록 도와 주옵소서. 친히 사람이 되셔서 시험받으시고 고난을 받으심으로 저희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능히 우리를 도우시는 대제사장이신 주님을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