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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1편.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는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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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1편.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는 복이 있다

시편 41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4-29

말씀내용
41편.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는 복이 있다. (찬 394)

1. 41편은 다윗이 가난한 자들을 감독하고 돌아볼 자들을 임명하면서 지은 시로 보인다(아람어 역본의 머리말). 교회는 늘 가난한 자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는 교회 안의 사람들이고 다음으로 교회 밖의 사람들이다. 1~3절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볼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4~9절은 다윗 자신의 경험이다. 10~12절은 다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복 있는 사람’이 가지는 확신을 표현한다. 13절은 제1권(1~41편)의 모든 내용에 대한 화답 송영이다. 제1권은 복있는 사람으로 시작해서(1:1) 복있는 사람으로 마친다(41:1).

2. ‘가난한 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육체적으로는 건강이 약하거나 장애가 있고 가정적으로는 기댈 가족이 없거나 적어서 외롭고 명성으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영적으로는 낙심에 처한 사람들이다(1). 주님의 말씀대로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있다(요 12:8). 이런 자들을 알아주고 찾아 돌보아 주는 자는 복이 있다(행복하다). 여기서 ‘보살핀다’는 말은 그런 사람들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행에 싫증 내지 않고 보다 꾸준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며 역겨움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내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 이상으로, 신중한 판단력으로 시간과 관심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1절이 말하는 ‘복’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일차적 보상이고 약속이다. 그는 적은 것으로 큰 것을 얻는 사람이다. 다윗은 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자기 경험을 소개한다. 그것은 “재앙의 날에 저를 건지신다”는 하나님의 두 번째 약속이다. 이것은 재앙을 만나지 않고 어려움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다. 재앙이나 어려움이 닥쳐올 때 하나님께서 건지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행한 모든 숨겨진 선행과 봉사는 하늘의 창고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과 같다. 2절은 부차적으로 주어지는 복을 언급한다.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신다. 그를 원수에게 맡기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주시나이다(3).” 얼마나 자상하고 감미롭고 부드러운 말씀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우리의 간병인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병에 걸려있을 때 우리를 고쳐주시는 의사시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알았고 이것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가 누릴 복이다.

3. 다윗은 자기 경험을 회상한다. 다윗은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며 살았으나 막상 자기가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아무도 곁에서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하나님 만이 그의 도움이 되어주셨다. 인간적으로 큰 외로움을 경험했겠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특권을 누렸다. 4절은 다윗의 고통이 그의 범죄와 관련되었을 보여준다. 이때 원수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몸이 아픈 다윗을 저주하며 죽기를 바랬다(5). 그들은 다윗에게 거짓을 말했고 나가서 그를 비방했다(6). 그들이 말한 ‘악한 병’은 귀신 들림처럼 못된 병을 일컫는다(8). 그들은 다윗이 다시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했다(8). 신자는 결코 이런 악인들의 자리에 설 수 없다.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다윗을 배신하여 그를 향해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9). 이것은 주님께서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는 상황에 적용하신 말씀인데(요 13:18). 다윗 자신도 이런 배신을 경험했다. 자기는 가난한 자를 살피고 살았는데 자신이 곤궁하게 되자 아무도 자기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으니 불평이 나올 만 하지만, 다윗은 세상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돌보심을 경험한다.

4. 10절의 기도는 보복적으로 읽힐 수 있다.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구약의 이런 기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을 향한 배역과 거부에 대하여 하나님 자신이 가지고 계시는 분노와 심판의 정서를 공유하는 기도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개인적 차원의 보복이 아니라 왕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던 원수들이 그들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주께서 자신을 기뻐하고 계심을 확인한다(11).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진실함(integrity)이다. 그것이 12절에 ‘온전한 중에’라는 말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진실함을 아시고 나를 붙들어주시며 나를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신다고 다윗은 확신하여 고백한다(12).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고백이다.

5. 41편은 그리스도인이 가까운 친구의 배신으로 외로울 수 있지만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도움을 경험하는 복을 누린다고 말한다.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말이다. 당신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가? 이것은 돈이 많고 적은 문제가 아니다. 주의 말씀을 기억하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 가난한 사람은 늘 교회 안팎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다. 예수님은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며 그들이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다(마 10:40~42). 그 작은 자는 누구인가? 주님은 또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지고 바다에 빠지는게 낫다고 하셨다(마 18:6). 사람들이 무시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작은 자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신다(마 18:10,15).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우리도 이렇게 이 말씀에 화답하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6.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 가난함을 아시고 찾아와 보살피시듯이 저희도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삶을 살도록 믿음과 은혜를 더해주시옵소서. 그리고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을 충만히 누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