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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 43편. 영적 침체에서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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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 43편. 영적 침체에서 드리는 기도

시편 42, 43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4-30

말씀내용
42~43편. 영적 침체에서 드리는 기도 (찬 388)

1. 42편에서 처음으로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고 다윗이 아닌 사람에게 돌려지는 시가 등장한다. 고라는 다윗이 성전 예배에서 찬송의 책임을 맡긴 레위 지파 고핫의 후손이다. 스펄전은 이 시가 고라 자손의 시로 되어 있으나 이 시에 배어있는 다윗의 체취로 볼 때 다윗이 지어 고라 자손에게 맡긴 것이라고 확신한다. 42~43편은 깊은 영적 침체에 빠진 성도의 기도다. 시인은 자신의 불행, 영혼의 불안, 두려움, 긴장감, 낙망 등 자신이 당면하는 상황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성도들은 종종 이런 침체를 경험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복음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누릴 수 없으며 복음을 전하는 일도 감당하기 어렵다. 42편과 43편은 42:5,11; 43:5의 동일한 후렴으로 볼 때 본래 연결된 하나의 시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42:1~5) 오랜 가뭄 끝에 기진맥진한 가련한 암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혹은 쫓기는 수사슴이 사냥개들을 피해 다쳐서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씻기 위해 본능적으로 강을 찾듯이, 시인은 영적 침체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깊은 목마름을 고백한다(42:1). 이런 갈증과 갈망은 충족되기까지는 결코 잊혀지거나 미루어질 수도 없다. 이런 영적 갈망은 은혜 받은 사람의 증거다. 은혜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다. 시인은 성소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기억하고 사모한다(2). 시인을 낙심하게 하는 것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묻는 도전이다(3). 그는 경건한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던 시절을 회상하지만(4), 이 회상은 오히려 이 상황 때문에 시인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한다. 그는 낙망하며 불안해 하고 있지만(5), 자신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설교한다(5b). 그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며 결국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3. (42:6~11) 한 성도의 고통과 번민, 그리고 영적 침체가 한 번의 기도와 한 순간의 찬송으로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다시 시인은 낙심의 상황 때문에 고통하고 있다(42:6). 하지만 그는 과거에 하나님과 가졌던 아름다운 은혜의 경험들을 회상한다. 아마 요단 땅, 헤르몬, 미살 산은 그런 은혜 체험의 장소들을 가리킬 것이다. 자신이 겪는 고통과 환난을 주의 폭포소리, 주의 파도와 물결이라고 말함으로써 시인은 자기가 악인의 손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7). 그래서 낮에는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노라고 말한다(8). 자기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성도가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는가?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복되다(9). 시인은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하여 부르짖는다(9~10). 결국 시인은 다시 자신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라고 설교하면서 마친다(11).

4. (43:1~5) 시인은 자기를 비난하는 헛되고 거짓된 비난에 시달렸다. 그 속에서 자기를 변호하고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다(1). 시인은 하나님께서 빛과 진리를 보내 자기를 주의 성산과 장막으로 인도해주시기를 구한다(3). 그가 돌아가기를 원하는 곳은 편안한 궁궐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이었다. 그에게 하나님은 최고의 기쁨이었다(4). 기쁨의 근원이며 기쁨의 기쁨이란 말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참된 성도의 탄원이다. 이런 하나님께 다시 나아갈 생각을 하면서 시인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 속에서 낙심하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다시 설교한다(5). 환난 중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5. 환난과 영적 침체 속에서 자신에게 설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준다. 성도는 스스로에게 설교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자신을 꾸짖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꾸짖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인은 깊은 은혜의 확신 가운데 나아간다. 그가 원한 것은 환난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도, 궁궐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다시 경건한 무리와 함께 기쁨의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것이었다. 당신도 그러한가?

6. “하나님 아버지, 저희 영혼이 때로는 영적 침체에 빠지고 환난에 처하지만 시인이 했던 것처럼 저희도 자신에게 주의 모든 말씀으로 설교하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큰 기쁨의 하나님께 나아가 찬송함으로 침체에서 건짐을 받는 은혜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