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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네가 인생 뿐임을 알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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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네가 인생 뿐임을 알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라

시편 9편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4-05

말씀내용
9편. 네가 인생임을 알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라. (찬 494)

1. 9편은 승리를 노래하는 감사시다. 어떤 승리인가? 불의하게 자신의 피를 흘리려는 원수들(12), 자신을 미워하는 대적들 앞에 있는(13) 다윗은 거의 사망의 문에 이른 듯 하다(13). 그들은 다윗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웅덩이(함정)를 팠고 그물을 쳤다(15). 다윗은 불의한 자들에게 억울하게 송사를 당하고 있다(4). 다윗은 이 모든 상황에서의 승리를 감사한다. 다윗은 ‘감사하며’ ‘전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한다’(1~2). 다윗의 찬양과 고백과 간증은 자기 삶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체험적 고백이다. 자신을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님을 경험한 다윗은 딸 시온의 문에서(‘딸 시온’은 예루살렘 백성, 곧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주의 찬송을 다 전하겠다고 말한다(14). 항상 그리스도인의 삶이 1,2절과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이런 복된 경험을 주신다. 당신은 지금 이런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가?

2.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다(4)’는 말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나는 내 권리를 잃지 않는다는 확신을 표현한다. 하늘 보좌에 계시고 우리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고 변호하신다. 이것이 성도의 위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를 위하여 우리를 지키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생각은 종종 우리 자신을 속이고 우리의 이익(명예)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위험이 있다. 이름을 내지 말고 명분을 걸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을 섬기고 겸손히 행하다 보면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나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볼 것이다.

3. 7-12절은 과거 시제에서 미래 시제로, 개인의 문제에서 세계의 문제로 옮겨간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지만(7~8)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자비와 은혜를 나타내신다(9~12).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8)’라는 말은 사람의 법정에서야 어찌 되든 하늘 보좌에서는 공의로 심판한다는 확신을 표현한다. 다윗은 공의로 판단하시는 위대한 왕의 법정에 설 것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얻는다. 성도는 이 공의의 법정을 생각할 때 모든 비방 속에서도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은 압제 당한 자의 산성이 되시고(9) 주의 이름을 알고 그를 의지하고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며(10) 피흘림을 심문하시는 무서운 심판자시지만 자기 백성을 기억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12).

4.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10).” 하나님에 대한 무지 보다 최악은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최고의 지식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빛 가운데 있기에 불신의 악심을 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 체험은 영혼의 닻 같아서 시련과 고난의 시간에도 방황하지 않게 한다. 믿음은 은혜로 주어진 지성이다. 믿음 없는 지식은 있을 수 있지만 지식 없는 믿음은 없다. 믿음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해의 빛을 비추신다. 지식 없는 맹목적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지식 없는 믿음은 보지 못하는 눈과 같다. 무지한 열심은 저주를 받는다. 때로 성경은 믿음을 지식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여호와를 아는 자는 여호와를 의지한다. 바울도, 아브라함도, 사라도 지식을 따른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5.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14).” 다윗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찬송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주님의 행하신 일과 주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너무나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 제가 형식적으로나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제 마음 깊은 데서 터져 나오는 감격으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저를 언제나 사망의 문에서 일으켜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마음에 있는 자는 복되다. 이런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얼마나 선하신지 알고 평생 그분을 말하고 선포하고 전도하며 사는 자는 복되다.

6. 다윗은 열방과 개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에 떨어지는지를 보았다(15~16). 그리고 장래 공의의 심판과 더불어 나타날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한다(17~18). 그날이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은혜의 날이 될 것이다. 다윗은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19~20). 그는 모두가 자신이 인생일 뿐임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여기서 인생은 히브리어 단어 ‘에노쉬’인데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생을 가리킨다. 기도는 성도들이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무기다. 전투가 너무 치열하여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때 우리는 든든한 우군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우군은 우리가 믿음으로 “여호와여, 일어나소서!”라고 부르짖어 신호를 보낼 때까지 매복하여 숨어 있다. 전투에서 완패를 당해도 전능하신 자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7. 인생이 인생일 뿐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면 누가 하나님을 찾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 인생일 뿐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심판 날에 가서야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인생이 인생일 뿐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가? 다윗은 그것을 배웠고 알았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깨달은 자들이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도 그 하나님을 섬기는 감격으로 살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8. “하나님 아버지, 온갖 비방을 받아도 하나님의 심판 날이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얻게 하시고 저희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선포하도록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저희의 인생 됨을 점점 더 깊이 알게 하사,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 위에서 저희의 믿음이 자라가고 주를 더 깊이 의뢰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