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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는 인내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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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6장.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는 인내하는 신앙

히브리서 6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11-11

말씀내용
6장.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는 인내하는 신앙 (찬 43)

1.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떠나라는 말씀은 그것이 나빠서가 아니다(1). 그리스도 도의 초보만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으면서 더 깊고 성숙한 영적 지식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거나 나아가는데 게으른 성도들을 향하여 기자는 더 성숙하고 더 깊은 데로 나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란 초대교회 당시에 강조했던 기본적인 가르침이었다. 가령, 죽은 행실을 회개함,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세례 또는 씻음, 안수, 죽은 자의 부활, 영원한 심판과 같은 주제들이다. 유대교 배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은 행실을 회개한다는 것은 아마도 행위 구원을 위한 자기 노력을 의미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이런 문제는 중요했을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회개 만으로는 안 되고 믿음의 적극적 차원이 요구된다는 강조였을 것이며, 세례와 씻음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이 가르치신 세례 사이의 혼동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가르침을 의미할 것이다. 안수는 임직을 위한 안수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기독교회에 들어올 때 안수 받던 초대교회의 관습을 의미할 수도 있다.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은 종종 초대교회가 종말론으로 혼동을 가졌던 것과 관련한 종말론적 가르침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매여서 더 이상 깊은 경건의 지식으로 가지 못하고 영적 어린 아이에 머무는 것을 기자는 책망한다.

2. 기자는 이어서 박해와 핍박 속에서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 즉 배교자들에 대해서 말한다. 배교자의 특성은 세 가지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물을 경멸했고(4~5)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했으며(6)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렸다(7~8). 이 부분은 난해하다. 하나님의 선물은 한 번 비췸을 얻고(세례를 의미할 수 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성찬을 의미할 것이다)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것이다. 존 오웬은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구원하시는 사역과 구분하였다. 이것들은 잠시 하나님의 선하심과 말씀과 은혜를 경험하지만 지속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은혜 아래 있다가 떠난 자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나 백보좌 심판의 말씀(마 25)은 본문의 해석에 도움이 된다. 우리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살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도 마찬가지다(고후 13:5). 우리의 영적 안전은 회심 체험의 강도나 회심의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열매가 열쇠다(마 7:14).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다루었던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의 분별과 같은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3. 비록 배교자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신실하게 믿음 안에 머물렀다. 이제 기자는 서신의 성격을 경고에서 격려로 돌린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저버렸지만,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9). 그러나 그 더 좋은 것의 원인은 성도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기인하는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9~10).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보여준 섬김과 행위, 그리고 그것이 흘러나온 원천인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보고 아시고 그것을 갚아주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관대하시다(11~15). 그들이 사랑 안에서 나타냈던 그 동일한 부지런을 이제는 믿음과 소망의 영역에서 끝까지 나타내야 한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본을 소개한다. 그는 어려운 삶 속에서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의 약속을 붙잡고 산 인물이다. 이 점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가르치는 믿음은 인내하는 믿음이다. 셋째로 하나님은 의지할 만한 분이시다(16~20).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을 뿐 아니라 믿음이 약한 백성들을 위하여 맹세까지 하심으로써 자신의 말씀의 확실성을 확증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신 하나님을 생각해보라(창 15). 하나님은 당신의 성품을 두고 맹세하셨다. 맹세로 주신 약속과 함께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을 성도들은 기억해야 한다. 2세기 말에 닻은 성도들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리키는 의미심장한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구자가 되셨다. 우리는 그를 따라서 하늘의 성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기자는 이 영혼의 닻 같은 소망을 붙잡으라고 권면한다(19,20).

4. 1세기 신앙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후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 격려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격려는 중요하다. 목회자의 격려도 필요하고, 성도 간의 서로를 격려함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격려는 성경적이며 진리에 부합해야 한다. 이런 격려 속에서 성도는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며 거기 영혼의 닻을 내리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님을 따라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5.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넘어 성숙함의 신앙으로 가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변화무쌍하고 의지할 것 없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관대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 영혼의 닻을 내라고 흔들리지 않는 복된 은혜를 더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