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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전투하는 지상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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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장. 전투하는 지상교회들

요한계시록 3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12-12

말씀내용
3장. 전투하는 지상 교회들 (찬 357)

1. 다섯번째는 사데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다(1~6).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고대 루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당시 가장 번창한 상업 도시 중 하나이기도 했고 휴양지로서 방탕과 사치와 부패의 도시이기도 했다. 눈에 보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사데교회는 스스로는 살았다고 하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죽은 교회였다(1). 이것은 영적으로 잠들어있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들 자신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헨드릭슨은 이렇게 썼다. “사데 교회는 매우 평온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이 즐긴 평강은 공동묘지의 평강이었다.” 각종 프로그램과 활동은 분주하게 돌아가지만 생명은 없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없었다. 영적으로는 죽어있는데 교회는 분주했다. 주님께서는 온전한 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2). 각성해야 한다. 거의 죽게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붙들고 더욱 굳게 잡아야 한다. 그들이 사는 길은 회개뿐이다(3).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들은 복음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도적 같이 임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 교회에도 소수의 신실한 성도들은 있었다(4). 그들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유 1:23). 그들에게는 주님이 흰옷을 주어 주와 함께 다니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신다(5). 이기는 자들은 다 흰옷을 받아 입을 것이고 주님께서는 이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고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다. 흰옷을 주신다는 것은 성도의 성화가 완성되어 영화로운 구원에 이른다는 말이다.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보다 아름답고 영화로운 약속이 어디 있는가? 사데교회는 어쩌면 오늘 한국교회들이 처한 형편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일지 모른다.

2. 여섯번째는 빌라델비아교회다(7~13). 빌라델비아는 동방으로 가는 관문도시로서, 동방으로 헬라 문화를 전파할 목적으로 세워진 도시였다. 주님께서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서 말씀하신다(7).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주님의 말씀을 굳게 지켰다(8).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작은 교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사탄의 회당을 대적할 만큼 강한 교회였다(9).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전도와 복음 사역에 대한 결실을 약속하신다. 복음을 대적하던 자들이 무릎을 꿇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시험의 때에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10). 그러므로 빌라델비아 성도들이 힘쓸 것은 가진 복음을 굳게 잡아 면류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11).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12). 지진이 많던 빌라델비아의 건축 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기둥이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가지는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약속하신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과 주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된 백성임을 인치시겠다는 약속이다.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복음의 진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복음 전하기를 힘썼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세상에서는 무명의 작은 교회였을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알아주시는 교회였다. 주님은 크기가 아니라 신실함으로 판단하신다.

3.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14~22).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14).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멘이라고 할 줄을 몰랐고 충성이나 참됨과는 거리가 먼 교회였다. 라오디게아는 상업적으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고 옷감과 피혁제품으로 유명했다. 또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어서 안약으로 유명했다.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구역질이 난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셨다(16).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그런 그들의 상태에 대한 주님의 책망이다. 이들은 영적인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이들에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고 안약을 사서 발라 눈을 떠서 보라”고 하신다(18). 불로 연단한 금은 믿음을 상징하고, 흰옷은 의의 옷이며, 안약을 바르라는 것은 영적 눈을 뜨라는 것이다. 비록 이들의 모습이 토해낼 정도로 악한 것이었으나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듯 말씀하신다(19). 열심을 내고(더 이상 미지근한 채로 살지 말고) 회개하라고 하신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신자들의 무관심과 교만 때문에 성도들의 삶 밖에 서 계셨다(20). 주님께서는 이들이 미온적인 자세와 오만함을 버리고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지라고 권면하신다.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적이고 영적이고 풍성한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며 천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존 플라벨(John Flavel)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최상의 교제를 가지도록 힘쓰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겨우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는 정도의 은혜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지상에서 천국 가까이에 닿을 수 있게 해주시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리십시오.”

4. 지상에는 완전한 교회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어떤 교회는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았다. 서머나교회가 그랬고 빌라델비아교회가 그랬다. 반면에 어떤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어떤 면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심한 책망만 받아야 했다. 사데교회가 그랬고, 라오디게아교회가 그랬다. 지상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다. 끊임없이 마귀는 교회를 허물기 위해 열심을 내고 쉬지 않는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은 그것을 알고 복음의 진리를 붙잡았고, 주님 앞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하며 사는 일에 인내하였다. 우리도 이렇게 싸우지 않는다면 결코 ‘이기는 자’가 될 수 없고 ‘이기는 자’에게 약속하신 그 놀라운 약속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비참에 이를 것이다.

5. “오 하나님 아버지, 저희 교회를 축복하시고 이 시대의 교회들을 축복하사 온전한 교회를 이루는 이 영적 싸움을 신실하게 그리고 끝까지 싸우고 이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