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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장. 430일의 무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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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장. 430일의 무언극

에스겔 4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7-09-01

말씀내용
4장. 430일의 무언극 (찬 212)

1.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침묵하게 하시면서 일종의 무언극 같은 형식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 무언극은 3막으로 구성되고 각 장면은 ‘가져오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그 명령들은 ‘토판을 가져다가(1)’,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9)’ 그리고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5:1)’이다. 4장의 1,2막은 각각 예루살렘 포위 공격(1~8)과 함께, 당시 예루살렘 거민들과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백성의 고난(9~17)을 보여준다.

2. 토판은은(1) 바벨론의 커다란 진흙 벽돌을 굽기 위해 준비한 부드러운 진흙 덩이를 가리킬 것이다. 에스겔은 이 토판에 막대기나 손톱으로 자기가 기억하는 예루살렘의 지도를 그렸다(1). 그리고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포위 공격을 당하는 예루살렘의 모형을 만들었다(2). 사람들은 에스겔의 이 이상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의 다음 행위에도 관심을 모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겔은 예루살렘 주위에 토성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세우고 또 철판을 가져다가 자기와 예루살렘 모형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2~3).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몸짓이었다.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공격을 하는 것은 사실 바벨론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어서 에스겔은 예루살렘 모형 위에 좌편으로 누워서 390일을 지냄으로써(4~5), 고통 받는 이스라엘을 보여준다. 본래 제사장 가문이었던 에스겔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선 자로서 양자를 대표하고 있다. 이튿날에도 에스겔은 그 모형에 좌로 누워 보냈고 이렇게 하기를 하나님의 명령대로 390일 동안 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일정하게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390일은 이스라엘 족속이 범죄한 390년의 햇수를 날로 계산한 것으로, 주전 10세기 초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한 때부터 주전 587년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의 기간이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통치 때부터 죄악 가운데 행했다는 하나님의 선언인 셈이다. 이렇게 390일 동안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묘사하는 무언극을 했다. 그리고 다시 반대편인 우편으로 누워서 40일을 더 보내게 된다(6). 이것은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북왕국과 남왕국을 각기 나누어서 다루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죄악’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죄와 죄책 혹은 그에 합당한 형벌을 의미할 때 쓰이는 단어이므로, 만일 형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 후 유다인들의 포로 기간(이것은 형벌이었다)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때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유다 백성들이었므로 마지막 40일이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언급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광야 40년이 한 세대를 의미했듯이, 여기서도 포로로 끌려간 세대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에스겔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에게는 조국으로 돌아갈 소망이 적어도 자기 세대, 자기 생애에는 허락되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3. 2막은 9절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포위공격을 당하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먼저 에스겔은 누워서 무언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간 동안, 밀, 보리, 콩, 팥, 조와 귀리를 죽지 않고 생명을 부지할 만큼 소량만 먹어야 했다(9~10). 물도 하루에 약 0.6리터 정도만 허락되었다. 이것은 거의 단식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지켜보는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깨달아야 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들이 당할 무서운 고통을 보여주는 예언이었다. 그 누구도 이 무언극의 무서운 메시지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회개하든가 불신하든가 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에스겔에게 사람 똥(인분)을 연료로 그 곡물들로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으라고 하셨다(12). 제사장으로 훈련된 에스겔에게 인분을 사용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었기에, 에스겔이 구하자 하나님은 인분을 의식상 부정하지 않은 쇠똥으로 대신하도록 허락해주셨다. 그가 누워있는 동안 먹은 음식의 양은 예루살렘 포위 기간 중 이스라엘 백성의 음식 배급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주고, 인분에 구워먹으라는 명령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이 부정한 땅에서 음식을 먹는 불행을 보여준다.

4. 선지자는 도합 430일 가량, 소량의 음식을 먹으면서 예루살렘 모형 위에 누워서 지내야 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예언의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말이다. 이것을 지켜봐야 하는 에스겔의 아내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 전하든 행위로 보여주든, 그것은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대가를 요구한다. 이것이 에스겔과 그 아내가 감당해야 했던 일이다. 우리는 뒤에서 에스겔과 그 아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종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일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대가를 피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5.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 그 말씀과 뜻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인지 보나이다. 그 대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감당하는 은혜를 허락하사, 끝까지 신실하게 부르심을 따라 순종하여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