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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7장.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이것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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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7장.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이것을 믿는가?

에스겔 17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7-09-14

말씀내용
17장.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이것을 믿는가? (찬 352)

1. 선지자는 15장에 이어 17장과 19장에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사용한다. 포도나무는 감람나무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농업에서 아주 흔한 나무였고 이스라엘에 대한 중요한 상징이기도 했다. 15장이 포로로 잡혀온 자들이 타다 남은 포도나무처럼 쓸모 없는 존재, 절망적인 상태임을 보여주었다면, 17장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소망을 주고 있다.

2. 본문의 역사적 정황은 여호야긴이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붙잡혀간 후 바벨론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왕이 된 시드기야가 언약을 배반하고 애굽에 도움을 청함으로써 망하게 된 이야기다. 처음에 나오는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고(3) ‘연한 가지’는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 왕과 백성들이다(4). ‘그 땅의 종자’는 시드기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5). 그는 자라서 높지 않은 포도나무가 되는데 그 가지가 독수리를 향했고 그 뿌리가 독수리 아래 있었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느부갓네살의 주권 아래 있었음을 보여준다(6). 하지만 이스라엘은 한 뿌리를 애굽으로 향하여 다른 독수리인 애굽에게 뻗쳤다(7). 결국 이 배반으로 인하여 유다는 완전히 멸망하고 시드기야도 그 댓가를 받게 된다.

3.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맹세한 충성의 언약을 파기한 것을 가리켜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다’고 말씀하신다(19).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을 뿐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반복적으로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4. 이스라엘의 안전과 번영은 세상 강대국의 통치자들을 상징하는 독수리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다(22~24).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케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24). 인간 통치자들을 움직이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만사를 통치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결국 이 모든 비극적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선지자들이 말하였던대로)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5. 본문은 우리가 처음 듣는 말씀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듣고 배웠다.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데서 신뢰하는데로 가지 않은 것이다. 역사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가장 처참하고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 신앙이다. 우리가 인간 통치자의 주권 아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는 신앙이 우리를 얼마나 다르게 만들겠는가? 역사에서 그리고 현 시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권력에 굴종하는 비굴함이 아니라, 사자 같은 담대함을 잃지 않고서(잠 28:1) 권위들에 복종하며(롬 13:1~2) 참되신 주권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딤전 2:1~2)?

6. “하나님 아버지, 이 시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의와 부조리들 속에서 또 불의한 통치자 아래 거한다고 할지라도, 만군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리심 아래 있음을 기억하고 사자 같은 담대함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믿음과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