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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4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겪는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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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24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겪는 대가

에스겔 24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7-09-21

말씀내용
24장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겪는 대가 (찬 336)

1. 때는 시드기야 통치 구년 시월 십일(1), 주전 588년 1월 15일이다(왕하 25:1). 에스겔은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치러 가까이 왔다는 것을 하나님의 지시로 알게 된다. 이때 에스겔은 다시 한 번 고기 음식을 차려놓고 잔치를 벌이는 행위 예언을 하게 된다(3b~5). 예루살렘에 남겨진 사람들은 자기들을 좋은 고기라고 말했었지만(11:3~12), 사실은 녹이 난 가마가 국과 고기를 다 망쳐버리는 것이 예루살렘의 실상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전에는 바벨론 사람들이 제비뽑듯이 유다 백성을 선별하여 포로로 잡아 갔지만, 이번에는 그런 과정 없이 모두가 잡혀갈 것이라고 말한다(6). 7절에 그들의 피가 흙(티끌)에 덮이지 않고 바위 위에 있다는 말은 속죄함을 받지 못한 그들이 흘린 피 즉 그들의 살인 행위를 고발한다(22:2~12). 많은 나무를 올려놓고 불을 피워 고기가 거의 타버릴 때까지, 국물이 졸아들고 뼈를 태우기까지 그리고 가마 속의 녹이 다 벗겨 없어지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태우실 것이다(9~11). 하지만 이 일도 그들의 죄악을 다 벗겨낼 수는 없다(12~14).

2. 하나님께서 다른 또 하나의 상징적 행위 메시지를 에스겔에게 하게 하신다. 에스겔의 눈에 기뻐하는 것을 쳐서 빼앗아가실텐데, 에스겔은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표현하지 말라는 것이다.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이라는 표현은 진정하고 강렬한 애정을 나타내는 용어다. 이 말씀 후, 그 저녁에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를 데려가셨다! 당시 에스겔의 나이가 35세 쯤임을 고려할 때 에스겔의 아내는 20대나 30대 초반 쯤이었을 것이니, 그녀의 죽음은 아주 급작스러운 사건이었다. 에스겔은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대로 상을 당한 사람의 슬픔도, 예도 갖출 수 없었다. 눈물 조차 흘릴 수 없는 고통, 그를 억누르던 엄청난 절제의 노력, 에스겔의 이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당혹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에스겔에게 이게 무슨 메시지냐고 묻자(19).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끼고 사랑하는 성소 예루살렘을 더럽히고 그 거민들을 칼에 죽게 하실 텐데(21) 그 고난이 너무나 커서 누가 누구를 슬퍼할 겨를 조차 없을 것에 대한 예언이라고 설명한다. 에스겔은 이 예언 뒤에 예루살렘 파멸까지 예언을 하지 말고 잠잠하라는 말씀을 받은 듯한데(27) 이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이 이제 행해질 것이라는 의미다.

3. 하나님은 선지자의 젊은 아내를 급작스럽게 데려가시는 극단적 방식으로 유다 백성에게 메시지를 전하셨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그 눈에 기뻐하는 것’을 가져가심으로써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라도 돌아오게 하시려는 사랑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선지자가 ‘눈에 기뻐하는’ 아내를 먼저 데려가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눈에 기뻐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 죽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말로만 전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때로는 삶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으로도 말씀은 전해질 수 있다.

4. “하나님 아버지, 주의 종들이 말로만 말씀을 전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서 벗어나 저희 눈에 기뻐하는 것을 언제라도 가져가심으써 말씀을 전하실 수 있음을 알고,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라고 고백하는 믿음으로 신실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