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SERMON
새벽말씀묵상

Home > 새벽말씀묵상 > 갈라디아서 1장. 복음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1장. 복음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갈라디아서 1장. 복음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1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09-25

말씀내용
1장 복음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1.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대헌장으로 알려진 서신이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에서 복음을 전했던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과 더베 지역이 바로 이 편지의 수신처인 남부 갈라디아 지방이다.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예루살렘에서 온 거짓 교사들이 복음에 할례와 율법을 더함으로써 복음을 변질시킨 것을 보고 사도는 이를 바로잡고자 갈라디아서를 썼다. 이런 점에서 갈라디아서는 매우 논쟁적이고 그런 까닭에 더욱 복음의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2. 사도는 무엇보다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을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라고 밝힘으로써 이제 자신이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복음의 기원이 바로 하나님임을 보여주려고 한다(1). 복음은 객관적인 것이다. 그저 좋은 느낌 정도가 아니다. 사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사건이라고 정의한다(4). 이것은 우리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아무도 변개할 수 없으며 역사 속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이다. 믿는 자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는 자가 더해야 할 조건은 없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이 한 일은 그 복음을 거짓 복음으로 바꾼 것이다. 교회의 대적은 바로 교회 안에 있는 거짓 복음이다. 이런 이유로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사도는 쓰고 있다(8). 다른 복음은 거짓 복음이다. 다른 복음은 없다. 모든 판단의 기준은 복음의 진리이며 모든 관계를 결정하는 요소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사도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거나 그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로 행하기를 원했고 복음의 진리에 서기를 원했다(10).

3. 사도는 계속해서 자기가 전한 참 복음의 출처를 밝힌다. 그것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도,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11~12). 사도는 여기서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도는 자신의 회심 이전과 회심 이후의 변화를 설명한다. 회심 이전, 사도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고 그 주어는 자기 자신이었다(13~14). ‘그러나’(15) 회심 이후 자신의 인생의 주어는 하나님이 되었다(15~16). 회심은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자신을 택하시고 은혜로 부르셨기 때문에 된 일이다(15). 회심은 내 결정과 선택과 영접 기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자기에게 계시하셨다(16). 계시는 100%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복음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 사도는 회심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사도된 자들을 만나서 배우려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낸 일이다(17). 사도가 전한 복음은 누구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주신 계시라고 말한다. 그는 아라비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3년간 직접 그 복음을 배웠다. 그 후 3년이 지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어 거기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는데, 이 만남도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복음의 내용을 ‘조사하고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18).

4. 사도가 복음에 대해서 이처럼 한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것은 사람이 고안해낸 것도, 의논해서 만들어낸 계획도, 누구에게서 그가 배운 것도 아니었다.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객관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하나님이 주신 계시였기에 인간이 고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이다. 사도는 거짓 복음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양보하거나 앉아있을 수 없었다. 비록 사도가 인간적 차원의 고려들을 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복음 앞에서 부질 없는 것임을 알았다. 마치 모세가 금송아지를 섬기는 백성들 앞에서 두 돌판을 던져 깨뜨리고, 그날에 백성 삼천 명을 죽인 것과 같은 마음으로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를 대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복음이 흐려지고, 변질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사도의 이 자세처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양보하라. 그러나 복음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말라.

5. “하나님 아버지, 복음이 변질된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희도 사도가 지녔던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도가 전했던 순전한 복음을 전하고 지키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복음을 더 배우고 더 알아가는 열심을 주옵시고, 모든 것을 양보할지라도 복음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믿음과 확신을 더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