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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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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갈라디아서 3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9-27

말씀내용
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는 차별이 없다 (찬 525, 247)

1. 1~2장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통하여 복음의 진정성을 말했던 사도는 이제 3~4장에서 구체적으로 칭의 교리를 다룬다. 그 후에 5~6장에서는 적용을 다룰 것이다. 다시 사도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는 강한 표현으로 시작한다(1). 사도는 신자의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서는 자에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믿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에 믿음을 행위로 바꾸거나 믿음을 버린다면 처음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도는 그들이 율법을 행했을 때가 아니라 처음 믿었을 때 성령을 받은 것을 상기시킨다(5). 만일 갈라디아 교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정녕 보았고 믿었다면, 그들은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분별할 것이므로, 사도는 그들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면한다(1).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이렇게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은 육체의 행위로 마치지 않는다.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은 성령으로 마친다(3). 성화가 없는 칭의는 없다. 성화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입어가는 거룩함이다.

2. 사도는 누가 참 아브라함의 자손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자라고 설명한다(6~9). 아브라함 자신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이므로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창 15:6). 하지만 여전히 율법이 선포하는 저주의 문제가 남아있다. ‘율법 행위에 속한 자’는 율법의 행위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말한다(10). 이런 사람들은 다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벗어날 인간은 없기에, 사람이 살 길?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믿음 밖에 없다(11). 믿음과 행위(율법)는 서로 배타적이라서 함께 갈 수 없다(12). 결국 모든 인간은 다 율법의 저주 아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아 죽으시므로 믿는 자의 구주가 되셨다(13).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을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고 말이다(14).

3.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는 무엇인가? 사도는 약속(복음)과 율법의 두 개념을 대조함으로써 설명한다. 약속은 “내가 하리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율법은 “너는 할지니라”고 명령하시는 것이다. 사도가 사람의 예대로 말한다고 하면서 언급한 것은 유언이다(15). 여기 ‘언약’으로 번역된 헬라어 ????????는 유언을 의미하기도 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유언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로마법에 유언은 일단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고 나면 유언을 한 사람이 죽기 전이라고 할지라도 그 내용을 변경할 수 없었다. 사도는 15절에서 이 말을 하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도 430년 후에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의해서 폐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17). 유언의 수혜를 받는 피상속인은 유언에 기록된 약속에 의해서 상속을 받게 되는데, 만일 유언을 믿지 않고 멀리 떠나 버린 사람은 유언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 노력할 수는 없다. 단지 믿음으로 받을 뿐이다. 사도는 이렇게 ‘사람의 예를 따라’ 믿음의 도를 가르친다(15). 특별히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씨’(후손)는 히브리어로 단수 집합명사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16). 하나님께서는 때가 찼을 때, 그 약속된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위해서 보내셨다. 율법이 성과를 요구하고 성과에 기초하여 다루는 것이라면, 약속은 오직 믿음을 요구할 뿐이다(18). 이것이 은혜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세와 같은 중보자를 통해서 주어지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복음이다(20).

4.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율법은 약속(복음)을 거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21). 율법이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는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약속이라는 고속도로에 들어갈 길이 없는데 그 하나의 진입로로 율법이 주어졌다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19). 율법은 복음이라는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유일한 진입로다. 율법은 자체로는 생명을 주지 못한다(21). 지켜서 구원을 얻게 할 의도로 주셨다면, 여전히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어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은 약속과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구원하기를 원래부터 기뻐하셨다(22). 고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잠정적으로 주어진 것이다(19, 22). 사도는 율법의 기능을 두 가지 예로 설명한다. 율법은 사람을 가두는 감옥 혹은 간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22~23). ‘성경이 온 세상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말할 때 ‘성경’은 구약 성경 특별히 율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까지인가 하면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이다. 매인 자들은 풀려나기를 원하는데,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해주신 일이다. 율법의 기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예는 초등교사다(24). 초등교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이가 성숙한 청년이 되기까지 책임지는 노예인데, 대개 이들은 매를 들고 엄격한 선생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 성년이 되면 더 이상 초등교사의 지도와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이 율법의 또 하나의 기능이다. 엄격하고 무섭지만 일단 그리스도께 인도함을 받게 되면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이다(25).

5. 사실 바울 사도가 지금까지 이신칭의의 교리를 설명한 대상이 구약성경의 배경을 이해하는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면(3:6~25), 이제 사도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한 복음의 도리를 가르치려고 한다(3:27~4:31). 이 두 대상을 향한 사도의 가르침을 연결해주는 구절이 26절이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이 구절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데, 더 이상 율법이 감옥과 초등교사의 역할로서 그리스도인에게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사도가 여기까지는 구속사를 중심으로 설명해 왔다면, 이제는 한 개인 성도가 예수님을 믿는 과정을 중심으로 설명한다(이 차이는 중요하다!). 그 첫번째가 세례의 문제다(27). 세례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표시다(롬 6:3~4).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된 표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 이것은 옛 생활에서 새 생활로 결정적인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신자는 세상을 대하여 이전과는 다른 관계를 가지고 살게 된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현상은 그들의 이전 옷들이 다 벗겨졌고, 새로운 옷, 그리스도로 옷을 입음으로써 과거에 있던 모든 차별과 장벽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28). 이것이 교회의 신비이고 세상을 향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아들(26)의 신분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상속자)의 신분으로 확장된다(29). 그가 유대인인가, 헬라인인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 안에서 말이다. 이것이 사도가 포기할 수 없는 이신칭의의 복음의 내용이다.

6. 사도가 이렇게 치밀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 복음을 아는가? 우리는 충분히 이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시고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알려고 하는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이 복음의 진리로 무장하고 견고하게 세워짐으로 참된 교회, 세상에 증거가 되는 하나된 교회를 드러내기를 구하자.

7. “하나님 아버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 세상의 신분을 넘어 하나가 되게 하신 은혜를 누림으로 복음의 풍성함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