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1)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말씀내용
8장. 사랑 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찬 220)
1. 본문에서 사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음식)를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고린도교회는 이 문제로 분열되어 있었다. 고린도의 시장에서 파는 대부분의 고기는 이방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남은 고기들이었기에 이것은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은 우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먹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먹었지만, 먹으면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죄가 된다고 여겨서 먹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는 먹을 수 있다고 여기는 그 지식을 책망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지식은 교만하게 할 뿐 사랑처럼 덕을 세우지 못한다(1). 진짜 아는 사람은 아는 척 하지 않는다(2). 사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지식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말이다. 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자들일 것이다(3). 이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들이 무엇을 아는가 보다 누가(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아시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사도는 지식이 있다고 하는 자들을 책망한다. 그러나 사도가 그들을 책망한다고 해서 그들이 가진 지식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아는 대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4~6). 이것이 사도의 첫 번째 대답이다. 우상에게 바쳐졌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을 위하며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이런 지식이 분명치 않아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7). 사도의 두 번째 대답은 음식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세우거나 허물지 않는다는 것이다(8). 먹는다고 해서 더 거룩해지거나 안 먹는다고 해서 더 영적인 것이 아니다. 먹으면 큰 일 난다고 여긴 사람들은 양심이 약한 자들이고, 먹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지식을 가지고 먹는 이들은 강한 자들이다(로마서 14장 참조). 강한 자들의 지식은 옳았지만 그들의 태도는 틀렸다. 그들은 형제를 배려하지 않았고 자유를 남용하였다(9). 지식이 유용하고 덕이 되려면, 약한 형제에게 해가 되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10~13). 그러므로 사도는 자기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일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13). 이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사랑의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시지 않았는가(11)?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사 위하여 생명까지 주신 그 형제들을 누가 감히 넘어뜨린단 말인가?
2. 고린도 교회도 로마 교회와 같은 문제로 씨름하고 있었다. 원리는 동일하다. 연약한 형제를 위해, 그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자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진정한 자유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로 이런 자유에 이르게 한다. 양심의 거리낌없이 할 수 있을지라도, 형제의 양심에 거리낌이 되면 그것을 하지 않을 자유를 당신은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렇게 행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지식이 당신을 교만하게 하고 형제를 상하게 하지는 않은가? 사랑이 없는 지식은 교만하게 하나, 사랑 어린 지식은 교회를 세운다. 이런 지식을 구하라.
3.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세우는 참된 지식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게 하옵시고, 연약한 형제를 배려함으로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성숙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