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말씀내용
9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권리 사용법 (찬 211)
1. 사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문제에서 제기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한다. 자신이 자유인이고 사도이며 그리스도를 만나보았으며, 고린도교회의 설립자로서 마땅한 권리와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자로서 그 권리와 자유를 어떻게 행사하는지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사역의 열매인 고린도사람들이 자신을 본받기를 원하는 것이 사도의 마음이다(1~2). 바울 사도나 바나바를 제외하고 다른 사도나 교사들은 대부분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아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5).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다녔는데 이것은 더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스스로 천막 짓는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한 것이 베드로 사도보다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가 사도와 교사들에게 사례를 하는 것은 인간적인 관습으로나 성경적으로 옳다고 말한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십일조와 성전에서 나는 것으로 생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13). 그러므로 사도들과 교사들이 신령한 것을 뿌리고 육신의 것을 거두는 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지나친 일이 아니다(11). 다만 바울 사도는 그렇게 하는 것을 거절하였는데, 그가 이렇게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12). 바울 사도가 “죽을지언정”이라는 약간 극단적인 표현을 쓰면서까지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15). 즉,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말을 듣느니(사도는 고린도교회로부터 그런 비난을 들었다), 자신은 사례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마음 때문이다(15~16). 자신은 이 일을 위해서 주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그 직분을 받았기 때문이다.
2. 그래서 자유인이자 사도로서 바울 사도가 선택한 삶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삶이었다(19). 노예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얻고 싶은 것은 단 하나,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되기를 원했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내려놓았다. 몇몇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말이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신의 삶을 상을 얻기 위해 경주하는 경주 선수와 권투 선수에 비유하였다(24~26). 이기기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았고, 고린도 사람들이 이렇게 살기를 바랬다. 진정한 승자는 현재에 드러나지 않고 미래, 마지막 날에 드러날 것이다. 사도는 이런 삶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이런 자는 복음을 위한 수고를 기쁨으로 여길 것이다.
3. “하나님 아버지, 복음이 막히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얻기 위하여 저희 자신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자유를 온전히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 겪는 모든 수고를 최고의 영예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