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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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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리

고린도전서 10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2-09-05

말씀내용
10장.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리 (찬 218)

1.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사도는 자신이 형제를 위하여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포기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제 사도는 한 부정적인 사례로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사례를 든다. 그들은 홍해를 지나면서 세례를 받았고(사도는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에 비유한다) 신령한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셨으며 하늘에서 내린 신령한 양식인 만나를 함께 먹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와 구원을 예표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은혜를 받았음에도 광야에서 멸망 당한 자들이 적지 않았다. 우상숭배와 간음 그리고 주를 믿지 않고 시험했고 원망했기 때문이다(7~10). 이들은 고린도 교회와 모든 후대의 교회를 위한 거울이다(6,11). 이 과거의 교훈을 토대로 사도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스스로 신앙이 괜찮고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한다(12). 하나님은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시는 미쁘신(신실하신) 분이지 사람을 넘어뜨리시는 분이 아니다(13). 어떻게 자유를 사용하고, 자기 권리와 주장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하려고 한다면 모든 상황에서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감당할 은혜를 주실 것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피할 길을 주실 것이다. 피할 길은 초자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는 뜻이라기 보다 시험을 직면하여 믿음으로 감당하려는 자들에게 견딜 힘과 이길 능력을 주신다는 의미다.

2. 14절에서 사도는 다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의 문제로 돌아온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와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고기를 바치는 연회에 참석해도 되는가의 문제다. 첫 질문에 대해, 사도는 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다면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행동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한다면 삼가야 한다(8:9~13). 이것이 사도가 자신의 경우와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한 사례를 든 이유다. 사도는 이제 두 번째 문제를 다룬다. 그리스도인이 우상 제사가 드려지는 연회나 의식에 참석해도 되는가? 사도의 대답은 ‘안 된다’이다. 사도의 이 대답은 고린도 교회에 충격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우상 숭배 축제가 보편적인 문화에 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런 우상 축제(제사) 따위에 참여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고린도 사람들의 불평과 원망이 일어났을 것이다.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14) 말한 사도는 지금 자신이 스스로 분별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고 하면서(15) 성찬(주의 만찬)을 예로 들어 논증한다(16~17). 논증의 핵심은 ‘참여는 친교로 이어진다’는 원리다. 여기서 사도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네 번 사용한다(16절에 두 번, 18절과 20절). 기독교 친교(코이노니아)의 핵심은 주의 만찬에 있다. 잔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고 떡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형벌 받아 찢기신 살을 상징한다. 이것은 상징만이 아니라 영적 실재를 가진다. 성찬은 기계적 경험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영적으로 임재하시고 성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찬미로 가슴이 벅차 오르고 그리스도와 실제적인 나눔과 교제를 가지는 것이 주의 만찬의 깊은 의미다. 우상들도 참 신은 아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 속에서 영적 실재, 마귀의 실재가 작용하고, 결국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므로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다(20). 그것은 마귀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마음을 여는 행위다. 사도가 우상 축제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참여하는 그 축제의 우상과 참여하는 자들이 동일시된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한 떡에 참여하는 성찬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만들어주고 그리스도와 동일시(연합)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우상 축제에 참여하는 자들은 자신을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상과 동일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도는 우상 축제에 참여함을 반대하는 것이다.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다 마실 수는 없다(21). 주보다 강한 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사도는 권한다(22).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행위를 그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조상제사에 참여해도 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본문은 분명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3. 이제 사도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의 문제를 정리한다(23절 이하).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 해도, 모든 것이 다 유익하지는 않다(23). 먼저 일반적 원리는, 자기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다(24).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 권리를 말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다. 성도의 삶, 특히 교회의 삶에서 이 원리는 언제나 중요하다. 사도는 이 일반적 원리에 대해서 구체적 가르침을 준다. 첫째, 개인적으로 우상에게 바친 고기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시장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인지를 일일이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한다(25). 둘째, 불신자의 초청을 받고 가서 먹을 때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인지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다(27). 그러나 만일 누군가 이것이 바쳐진 제물이라고 말을 해서 알게 되면 그것을 말한 사람과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아야 한다(28). 이것은 자기 양심이 아니라 남의 양심을 말하는데, 왜 우리가 남의 양심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29~30), 사도의 대답은 31절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자유를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해서 내려놓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존귀를 얻도록 하기 위해 나는 수고할 수 있다. 말로만이 아니라 범사에 이 원리를 신자들은 적용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에게도 거치는 자,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32). 범사에 모든 사람의 유익과 기쁨을 위하고 자기 기쁨과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얻게 하고자 함이다(33). 이 말은 언제나 사도의 다른 말과 함께 읽혀져야 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범사에 참고 그들과 같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하는 일이다. 이 분별과 제한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의 종일 뿐이다.

4. 사도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문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일반적 생활 원리를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주장, 자기 권리를 말하고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섬기는 사람이다.

5.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조상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가벼이 여김으로 귀신과 교제하는 자리에 서지 않도록 지켜주옵시고,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그 동기와 목적으로 행하되 자신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을 구하고 행동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