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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장. 말씀을 분별하고 따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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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장. 말씀을 분별하고 따른다는 것

열왕기상 22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6-10-18

말씀내용
22장 말씀을 분별하고 따른다는 것 (찬 287)


1. 열왕기상의 마지막 장은 아합의 죽음과 아합과 화친했던 유다 왕 여호사밧에 대한 묘사 그리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 대한 평가를 기록한다. 아합은 누구보다 많은 선지자들을 만났던 왕이다. 이것은 실로 은혜다. 그러나 그는 끝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된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함으로써 엘리야의 예언대로(21:19)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다.

2. 아합의 시대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평화가 시작되었다(1,44). 벤하닷과의 전쟁 후 아람과 잠시 평화 관계를 유지했고, 왕국의 분열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던 전쟁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즉위한 뒤 평화 모드로 들어가 아합과 여호사밧은 결혼동맹까지 맺는다. 하지만 이 평화는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계산에 좋은 것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다.

3. 아람과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아합은 여호사밧의 방문에 맞추어 자신의 길르앗 라못 탈환 계획을 내놓는다. 길르앗 라못은 본래 갓 지파의 기업 안에 도피성으로 지정된 성읍이었다(신 4:43; 수 20:8). 그러나 아람에게 빼앗겼고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과의 약속에서(20:34) 그 땅을 돌려받을 것을 예상했으나 그 일이 실행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경건한 여호사밧은 그 땅이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주신 땅이었기에 당연히 이 전쟁에 함께 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여호사밧은 경건한 왕답게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을 것을 제안하고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불렀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여호사밧은 이들이 아합에게 고용된 거짓 선지자들인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다른 선지자는 없는지 묻는 여호사밧에게 미가야가 있지만(사실은 엘리야도 있었다!) 그는 듣기 싫어 하는 것만 예언해서 자기가 미워한다고 하면서 아합은 여호사밧의 강권에 못 이겨 그를 부른다. 이 와중에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철로 뿔을 만들어(이 거짓 선지자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탁월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였다) 이 뿔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할 것이라고 확언을 한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람들은 미가야에게, 다른 선지자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 너도 그렇게 말하라고 주문한다(12). 아합에게 온 미가야는 주문대로 처음에는 전쟁에 나가 승리를 얻으라고 말하지만 아합은 이것이 진정성이 없는 말임 안다. 아합은 자기가 진리를 듣기를 거부하므로 미가야가 거짓을 말하는 줄 분별하였다. 결국 미가야는 이 전쟁에서 아합이 죽을 것을 예언하고, 아합 앞에 선 모든 거짓 선지자들이 사탄의 메신저들임을 고발한다. 진리를 말한 선지자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고난이었다. 그는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아야 했고, 아합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물과 고생의 떡을 먹이라고 명하고 그를 옥에 가둔다.

4.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합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미가야의 예언이 마음에 걸린 아합은 여호사밧을 이스라엘 왕으로 변장하게 하고 자기는 일반 군사들 속에 들어가서 전쟁을 하지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자신을 겨냥해 쏜 화살이 아니었지만, 그 화살에 맞았고 그것도 갑옷 이음새 부분의 가슴을 맞아 치명상을 입고 결국은 죽고 만다. 그가 병거에 흘린 피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개들이 핥았다. 이어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5. 여호사밧은 경건한 왕이었다. 그는 부친 아사의 길로 행했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히 행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실패도 기록한다. 그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 역대하는 그가 산당을 제거했다고 기록하지만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대하 17:6). 그는 아마도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들은 제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산당은 성전이 세워진 후로는 제거되었어야 했다. 이런 산당들이 백성들에게 여전히 편리했기에 여호사밧은 이것들을 제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실패였다. 여호사밧의 두 번째 실패는 불결한 동맹이었다. 그는 악한 아합과 화친하여 아합과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맞음으로써 유다 역사 최대의 위기를 초래하게 하였다(왕하 8:16~18; 대하 18:1). 셋째, 그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도 계속 화친하여 오빌에서 금을 실어오는 해상 무역을 구상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배를 파선케 하심으로 이 동맹무역을 막으셨다. 이후 아하시야는 재차 동업을 요청하지만 여호사밧은 거절하였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세 가지 길로 행했는데 그것은 아합의 길, 이세벨의 길, 그리고 여로보암의 길로 모두 악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섬기고 바알을 섬김으로써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격동하였다.

6. 본문은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가 거룩할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 없이 혹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는 없으나 우리는 마음 중심으로 불경건한 자들과 친밀한 사귐을 가질 수는 없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은 막대한 영적 손해를 초래한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7.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며 기도하지만, 결국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뜻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뜻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기 생각이 가득 차면 하나님의 뜻을 듣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8.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400명이 이구동성으로 승리를 외쳤어도 진리는 한 사람 미가야의 입에서 나왔다. 숫자는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진리를 따르는 것은 때로는 고난을 초래한다. 진리를 따르고 전한 미가야는 맞고 감옥에 갇혀 고생의 떡과 물을 먹었다.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은 고난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이 생명의 길이고 약속이 있는 길이다. 이것들이 열왕기상의 교훈들이다.

9.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만 행하게 하시옵소서. 눈에 좋고 더 크고 더 많은 것이 반드시 진리가 아님을 알게 하사, 저희로 어떤 고생이 와도 주님의 길로만 행하게 하옵소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없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모든 관계를 포기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