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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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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2장.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2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8-09-13

말씀내용
2장. 그리스도인은 그런 방식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찬 82)

1.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는 기쁨을 보려고, 그들을 방문하는 대신 눈물로 편지를 썼다고 말한다(1~4). 이 편지를 통해 사도는 그들을 향한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4). 이렇게 말하는 사도의 마음은 아비를 상하게 한 자식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다. 사실 사도와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심각하게 불거진 하나의 문제는 온 교회를 근심하게 한 사람에 대한 처리 문제였다. 사도는 그 사람을 징계하라고 요구했지만, 고린도 교인들은 그를 감싸 안으면서 도리어 사도를 대적했다. 이렇게 그 사람은 교회 전체의 근심거리가 되었다(5). 이에 사도는 눈물로 편지를 썼고, 이 편지를 읽은 적잖은 고린도 교인들은 회개하고 순종하여 그 사람을 징계하였다. 이것은 마땅한 일이었다(6). 그런데 이제 징계를 받은 그 사람이 회개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된 사도는 이제 그를 용서하라고 권면한다(7). 지금은 회개하는 형제에게 사랑을 보여야 할 때다(8). 사도는 그가 너무 큰 슬픔에 잠길까 염려하면서(7) 그에게 용서와 사랑을 주라고 권면한다. 고린도 교인들의 용서는 곧 바울의 용서이고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앞에서 행한 일이라고 말한다(10). 또한 용서는 사탄에게 속지 않는 일이다(11). 사탄의 계책은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교회 안에 퍼져 은혜의 통로를 다 막아놓게 하는 것이다. 용서와 사랑이 없는 자리에 쓴 뿌리와 분열을 심는 것이 사탄의 계책이다.

2. 2:13은 사실상 7:5절에서 이어진다. 사도는 고린도에 보낸 디도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래서 복음의 문이 열린 드로아를 떠나 디도가 오게 될 마게도냐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12~13). 거기서 디도를 기다리는 사도의 마음은 한없이 눌렸었다고 말한다(7:5). 그러나 결국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했다는 소식을 듣자 사도는 큰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된다(7:6 이하). 이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사도는 2:14에서 7:4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삽입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문제였다.

3. 14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본문이다. 표준새번역은 이 구절의 원의미를 잘 살려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개선장군이신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사도 자신이 포로로 맨 뒤에 끌려오고 있으며(고전 4:9), 환호하는 군중들이 개선행렬을 향해 던지는 꽃잎에서 나오는 향기를 묘사한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포로로서 자기를 정복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다.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개선 행렬의 선두마차에 탄 장군이 아니다! 사도는 자신의 약함과 죽음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복음과 그 향기로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는 사람이다. 이것은 모든 승리주의적 관점을 거부하는 말씀이다. 성취와 성공이 아니라 십자가의 포로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을 따라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다. 성공과 부와 학식과 명예와 업적을 추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되는 것은 세상에서 외적으로 성공한 그리스도인들만의 특권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포로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4. 이것은 생명과 죽음을 가져오는 향기다(15~16). 이것은 망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이고, 구원 받는 자들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다. 이것은 포로인 사도 자신이 풍기는 향기라기 보다 포로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그리스도의 승리의 향기이다. 십자가의 복음은 포로의 존재를 통해서 빛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의 향기인 십자가 복음은 모든 사람을 망하는 자와 구원 받는 자로 나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부르심이다(16b). 아무도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당할 수 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과 태도에서 고린도 교회를 혼란에 빠뜨린 거짓 사도들(교사들)과 자신을 구분한다(17). 거짓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에 물을 타지만(혼잡하게 한다는 말의 본뜻이다),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고 100퍼센트의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 이것이 거짓 교사와 참 교사의 차이다.

5. 본문은 사랑과 용서에 관한 교훈을 준다. 사랑과 용서의 대원리는 범죄한 형제에 대한 징계를 배제하지 않는다. 범죄한 자를 내쫓으라고 말한 사도는 다시 회개하는 형제를 용서와 사랑으로 받으라고 명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과 용서의 원리다.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 하는 것을 교회는 배워야 한다. 혹자는 사랑과 용서를 들먹이면서 징계를 못 마땅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교회의 본질과 하나님의 명백한 뜻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6. 그리스도인의 삶은 멋지게 승리하고 성공하고 성취하는 삶을 특징으로 삼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항복한 포로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포로로서 향기를 드러낸다. 그들은 십자가 복음 앞에서 자기들이 죄인임을 알고 인정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 복음에 물을 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사도는 세상적 승리와 성공의 잣대에 취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 복음의 정체성에 맞게 살고 있는가?

7. “하나님 아버지, 오늘날 교회에 참된 사랑 때문에 행하는 징계가 회복되고 참된 용서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저희가 세상의 성공 기준에 의하여 자만하거나 주눅들지 않게 하옵시고 부에 처하든 가난에 처하든 그리스도의 포로로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항상 살게 하옵소서.”